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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와 티끌

“나는 먼지(아파르)와 티끌(에베르)입니다.”(창 18:21-33)

미션21 phj2930@nate.com
2021년 09월 14일(화) 16:50
정형수 목사 아시아교회 담임 Mission Bible college & Seminary 대학원장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여호와와 독대를 하게 된다(창18:22). 창18:22의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오덴두 오메드 리프네 예흐와)란 본문은 원문비평에서 상당히 문제가 되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가장 권위를 자랑하는 사본들 중 초기 맛소라(MT) 학파의 사본에는 “여호와는 여전히 아브라함 앞에 서 있다.”(예호바 오덴누 오드 리프네이 아브라함)로 나온다. 그런데 이 원문을 서기관 학파(Scribal Emendation, 티쿤소프림)에서는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절대 권위의 훼손을 막기 위해 여호와와 아브라함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다(한글 성경). 그리하여 서기관 학파는 아브라함의 신앙의 위대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처럼 두 학파가 서로 다르게 Text를 바꿔 놓을 정도로 이 본문은 유명한 구절이다. 초기 MT 학파의 사본은 서 있음의 주체를 “여호와”로 기록했고, 서기관 학파는 “아브라함”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초기 MT 학파의 사본을 따른다면, 이 본문에서 “서 있음의 주체는 여호와”가 된다. 따라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한 여호와의 자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브라함의 고통보다 심판주이신 여호와의 고통이 더 크시다는 의미다. 따라서 여호와는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한 최소한의 중보 기도자를 찾고 계신다는 반증(反證)이 된다. 그래서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떠날 수가 없으셨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겔22;30, 시106:23).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에 대한 조급성이 아브라함보다 여호와가 더 강력하셨다는 의미다. 심판 속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여호와의 자비로운 배려다. 기회를 주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 역시 하나님의 선재적(先在的) 사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요15:16, 요일4:10). 우리의 행위에 의한 보상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다(엡2:8-9). 따라서 우리의 구원의 주체, 곧 주도권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먼저 우리 앞에 서 계시고, 항상 은혜를 베푸신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과의 논쟁에서 “나는 먼지이며 티끌이라”고 여호와 앞에 고백했다. 인간의 재료는 흙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을 “아담”이라고 하셨다. 흙(아다마)에서 왔기 때문이다. 창세기 2:7절에 보면 “흙으로부터 먼지”(아파르 민 하아다마)로 아담을 빚어 만드셨다. 인간의 재료는 대지(大地)가 아니다. 하찮은 흙의 먼지이다. 흙의 먼지를 취하여 인간을 만들었으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창조주 야훼와 피조물인 인간의 실존규정의 차이다. 따라서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다. 결국 인간은 취해진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다.
(다음호 계속)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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