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는 반항의 표출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저주였다. 어린 시절 아픈 상처로 나의 감정은 마네킹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억누를수록 더 깊게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나로부터 걸어 나와야 했다. 학교폭력을 당한 아들을 보고 심장 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왜 이 아이들과 10년을 함께 살았는지 가끔 생각해 본다. 사실 나는 잘 몰랐다. 왜 이 아이들을 데리고 살게 되었는지 뚜렷한 명분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난 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 삶이 완전하게 느껴졌다. 아니 평안하게 온전해졌다.
‘나처럼 굶지 않게 하리라, 비바람을 피할 따뜻한 방을 주리라.’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고향인 고흥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아니 가기 싫었다.
어머니가 계시니 항상 가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놀려서 싫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옳았다. 언제든지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부모가 이혼하여 갈 곳이 없는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집에 머물렀으니 8년을 함께 살기도 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8년, 오고 싶으면 오고, 갈 곳이 있으면 언제든 떠나게 했다.
공동학습장에서는 여러 가축을 길렀기에 성장기 아이들의 영양을 고려해서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등을 하루도 빠짐없이 먹였다. 그러나 생활비는 항상 부족했다.
한번은 재래시장에 가서 팬티 100장과 양말 100켤레를 샀다. 내 월급으로는 아이들의 취향에 맞는 속옷과 양말을 살 수가 없었다. 그나마 겉옷은 교복을 입었기에 다행이었다. 빨랫줄에 걸린 수십 장의 똑같은 속옷과 양말이 바람에 하늘거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 잘하는 것인지, 가정에서 사랑받아야 할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인지 걱정도 되었다. 그 시절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팬티가 공동이었기 때문에 섞이는 경우가 많았다. 애들이 놀렸다.
“선생님. 성진이는요, 습진이 걸렸거든요. 선생님도 이제 걸릴 거예요.”
“야, 내 걱정은 말아라, 괜찮거든? 하하.”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주로 편모나 편부, 조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많았기에 어떻게 사는지 확인 전화조차도 오지 않았다. 아니, 딱 한 번 어느 할머니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준호 담임쌤이세요?”
“네, 할머니.”
“거기서 밥을 준다면서요?”
“네, 네.”
“거기서 공부도 시킨다면서요?” “네.”
“뭐 그런 선생님이 다 있다요.”
이것이 다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살 때 받아본 최초의 전화였다. 지치고 배고픈 우리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다시 돌아갈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나의 학창 시절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이 자생력을 갖고 대학에 가고, 취업하면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되리라는 무모한 믿음으로 10년이나 지속했는지도 모른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비용이었다.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살다 보니 돈이 부족했다. 큰 아이 첫돌 때 여기저기서 금반지가 들어왔다. 꽤 많았다. 나는 그 돌반지를 훔쳤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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