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이라면 메두사를 모르지 않습니다. 아니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일상에서 단골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괴물이 메두사입니다. 메두사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는 괴물이요, 머리카락의 올 하나하나가 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무시무시한 괴물입니다. 이 괴물을 본 자는 결코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지 이 괴물을 보는 순간 힘살이 확 풀리면서 그 자리에서 생똥을 싸고 결국 돌로 변해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메두사가 살고 있는 동굴 앞은 석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고 합니다.
그런 메두사를 죽인 세리포스 섬의 영웅 페르세오스는 동정녀 다나에의 아들입니다. 그의 인생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메두사를 죽이러 갔습니다. 나름 철저한 준비를 하는데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로부터 아이기스 방패를 빌려 거울처럼 반짝이도록 닦아갑니다. 그리고 전령의 신 에르메스로부터 날개 달린 가죽신을, 저승신 하데스로부터 뒤집어쓰면 보이지 않는 투구를, 베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검인 하르페를, 이 세상 물건 중에 넣지 못할 것이 없다는 통자루 키비시스를 빌려 메두사의 동굴로 갑니다.
페르세오스가 메두사를 어떻게 죽였는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모든 장비 중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테네 여신이 빌려 준 아이기스 방패입니다. 메두사의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페르세오스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투구를 쓴 채 뒷걸음질로 동굴로 들어가 메두사의 얼굴에다 거울처럼 반짝거리게 닦은 아이기스 방패를 들이밀었고, 메두사는 방패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석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페르세오스는 검으로 석상이 되어버린 메두사의 목을 베어 자루에 넣습니다. 메두사의 가장 큰 힘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통쾌한 장면입니다.
시대가 암울하다는 것은 권력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강력한 힘을 남용해 다른 이들을 겁박하고 위협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기자가 고소를 두려워하며 글을 써야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조그만 흠이라도 털려 까발려질까봐 소심해지고, 시민들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눈밖에 나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괴롭힘을 당할까봐 무서워하게 됩니다. 법은 정의를 실현함으로 사회를 따뜻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두려움과 차가운 현실을 깨닫는 도구로 쓰인다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것입니다. 요즘 상황은 그렇지 않은 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죄의 도구로만 사용되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함으로 삶의 따뜻함을 느끼는 희망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하면서 정작 배제와 혐오와 저주를 퍼붓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경외심을 느끼는 것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다릅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경외심이 아닌 공포심을 느끼는 하나님을 만든 것은 아닌 지 살펴야겠습니다.
이 시대의 메두사는 누구일까요? 무엇보다 교회에 성령이 아닌 메두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이들은 넷플릭스에 나오는 “나는 신이다”의 교주들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메두사들이 교회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가장 악한 권세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무력화시키고 부활을 통해 새생명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큰 뜻을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지나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온전히 드러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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