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매섭다. 봄은 불과 한달여 남았는데 멀게만 느껴진다. 유난히 눈이 많은 올해 발자국 하나없는 눈 위를 걸어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다. 발자국은 걸어온 증거였다.
“설야중거 불수 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인 길을 함부로 걷지 마라. 내가 가는 길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니)‘김구 선생이 쓰셨다고도 하고 거슬러 올아가 조선시대 누가 썼다고도 하는 이 시, 누가 썼으면 어떠랴! 성경에는 이보다 더 차원높은 말씀이 나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마태복음 16:24).” 같은 내용의 말씀은 마가복음(8:34)과 누가복음(9:23)에도 나온다. 예수의 제자의 길은 함부로 걷지 않는 차원이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자기 십자가는 은퇴했다고 벗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죽는 그 날까지’ 벗을 수 없는 멍에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를 지는 것은 숙명이다. 착각하지 마라. 현역 은퇴한다고 인생도 은퇴는 아니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현실 앞에서 목사라는 직을 말하기 겁나고 부끄럽다. 자랑스러운 십자가를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 와중에서 목회자들의 은퇴 관련 소식들은 너무나 낯뜨겁기 짝이 없다. 은퇴하면서 퇴직금 문제로 시끄럽지 않는 목회자 찾기가 어렵다는 소식이다. 어느 목사는 수십억을 해가지고 나갔다는 둥, 그전에 몇십억을 술수를 부려 빼돌렸다가 좇겨나고, 성도 한 사람당 얼마로 계산하여 퇴직금을 주라고 고집 피우다가 쫓겨나다시피 했다는 둥, 별소리들이 다 들린다. 교인 수가 좀 되는 교회에서는 은퇴 후 집도 사주고, 배기량 몇천시시 되는 차 사주고 거기에 매월 생활비조로 몇백단위 면년간 주고 하는 식으로 흥정하다가, 남은 성도들에게서 그동안 받았던 사랑과 존경 싹 날려버리고 나갔다는 둥,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그렇지 않는 무명의 신실한 사역자님들은 물론 예외다.) 지금은 발없는 소문이 천리를 가는 것이 아니라 구만리도 간다. 수십년 사역 마치고 나가면서 결국 ‘당신도 결국 돈 밝히다가 물러나는구려, 결국 삯꾼 목자였구려’라는 오명을 흔연히 들으면서 마무리하는 모습들에서 이 나라의 교회의 암울한 운명을 바라본다.
모세는 불세출의 지도자였다. 이스라엘의 해방자.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대명하여 아시던 자,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이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으로 부르셨다. 사백년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곧 가나안 땅 입성 직전, 하나님께서는 대망의 약속의 땅을 보이시고는 안타깝게도 가나안 땅 입성을 허락하지 않으셨다(신명시 34장).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기서 죽었다. 나이 백이십세 때에 그것도 하나님에 의하여 강제로 은퇴당한 모세! 이제는 은퇴해서 안식이라도 조금 하다가 가야 하지 않겠는가? 나이 백이십 세였지만 눈이 흐리지 않았다고 하니 아직 왕성한 그 체력으로 세계여행도 다니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 백성들이 마련해준 전원주택에서 안락한 노후를 누리면서, 최고급 승용차로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받으면서 보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비정하게도 성경은 이 위대한 종이 죽은 후 간단히 그의 죽음 곧 장례에 대하여 간단히 추기한다.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신명기 34:6절)”
나는 이것이 은퇴의 길을 준비하고 있는 주의 종들이 곱씹어 보고 받아들여야 할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은퇴한다고 요란스레 떠들지도 말고, 한몫 챙기는 일을 마지막 과업으로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라. 종이여!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누가복음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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