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교회에서 극히 직접적인 현실 정치에 대한 설교를 지양하는 편입니다만 제 설교가 이미 정치적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또한 정치적이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선택해야하고,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야하고, 어떤 때는 강요하지 않고 양보해야할 때도 있어야 하며, 또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고도의 기술을 요합니다.
오늘 제목인 ‘소름끼치다'는 ‘소름 돋다’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어떤 이는 소름 돋을 만큼 감동을 주는데 비해 또 어떤 이는 소름끼치는 충격을 준다고 할 때 그 차이를 분명히 압니다. 소름 돋는 감동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하지만 소름끼치는 충격은 본질과 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의지하던 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본질에 대한 믿음과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단시일 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수년 많게는 수십 년 동안 형성해온 결과물들입니다. 그래서 한 공동체나 사회에서 형성된 문화와 관습을 쉽게 예단하거나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하지만 그럼에도 본질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보수진보와 좌우를 떠나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전통교회와 개혁교회의 간극만큼이나 서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영 논리에 빠져 서로를 공격하기에 급급하고 결국 악마화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스스로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비인간화, 비인격화, 몰지성화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이 요즘 자주 발견됩니다. 그래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한 예로 사회적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희생자에 대한 모욕도 여전하고, 유족들의 트라우마는 회복과 치유되기 보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이름으로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막말을 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을 보며 자괴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수십 년 동안 매우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 했던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는 제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신앙 이력을 밝히면서 자신의 이전 신앙때문에 소름끼쳤다는 말씀을 하실 때 목사로서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이 10.29 이태원 참사에서 생을 마감했을 때, 다른 유가족들처럼 거리에 나가 투쟁하기보다 신앙인으로 은둔하며 신앙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아들에 대한 신앙인들의 수군거림과 교회의 외면 그리고 분향소에 찾아오지 않는 같은 공동체 목회자와 성도들을 보면서 원망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소름이 끼쳤던 것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원망보다 만약 자신의 아들이 그곳에서 죽지 않았다면 자신도 그들과 동일하게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청년들과 유족들에게 동일하게 모욕적인 말들을 하거나 외면했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과 교회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비인간화 비인격화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설교하고, 예배하고, 성경공부하며 자기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23년 한해를 돌아보고 2024년을 시작하며 누군가에게 소름끼치는 경험을 하는 설교가 아니라 곱씹을수록 소름 돋는 감동을 주는 설교를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시대에 설교자의 책임이 큼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미션21 phj293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