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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게 만든 아이-Ⅰ
미션21 phj2930@nate.com
2023년 11월 09일(목) 15:39
박주정교장
광주광역시 진남중학교 교장
아버지는 시골에서 서당 훈장을 하셨다.
그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라 국민학교(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동네 청년들이 많았다. 자기 이름 석 자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문맹들이었다. 집안 형편이나 환경에 따라 생활환경이나 배움이 달랐다. 항상 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아버지는 누구를 가리지 않고 가르치고자 했다. 이렇게 시작한 농한기 서당에는 동네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집에서 함께 잠도 재우면서 아버지는 한문을 가르쳤다. 그들은 아버님을 존경하고 좋아했다.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절단해서 목발을 짚고 거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 군에서 주최한 체육대회 때 면장들과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골절됐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의술이 좋으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의술이 어두운 시절이라 집에서 낫겠지 하고 습부(濕敷)만 하셨다. 하지만 점점 더 심해져 여기저기 병원을 다녀봤지만 결국에는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시기를 놓쳐 병을 키운 것이다. 들을 때마다 한스러운 대목이다.
원래 우리 집은 부농이었다. 아버지는 젊은 날 경찰도 하고, 신문기자 생활도 했다. 다리를 다치기 직전에는 면장까지 하셨다. 아버지의 병원 치료비 때문에 많은 논밭을 팔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살던 집터까지 팔게 되어 오갈 곳이 없는 가족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동네 인근의 깊은 산속으로 이사를 갔다. 문중에서 마련해준 손바닥만한 땅이었다. 산을 개간해서 겨우 가족이 살 정도로 지었다. 그야말로 산중 외딴집 오두막이었다. 나는 뻐꾹새 울음밖에 없는 그 집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동네 청년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주산도 가르치셨다. 나는 아버지의 이러한 열정 덕분에 동네 형들하고 함께 한문 공부를 하고, 주산도 배우게 되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한문을 많이 아는 학생으로 학교에 소문이 났다. 주산도 잘 놓고 암산도 잘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여러 일들을 맡았고 잘 해냈다. 특히 담임선생님께서 시험이 끝나고 성적처리를 할 때면 항시 내게 맡겼다. 내게는 운명의 주산이다.
5학년, 6월이었다.
5월 중간고사를 마치고 선생님이 전교생 성적표를 나에게 주시면서 소계를 내라고 했다. 주산으로 각자 점수를 가산(加算)해서 열심히 집계해 나가던 중 내 순서가 왔다.
무척 궁금했다.
주산으로 살짝 가리면서 내 성적표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 성적이 잘못되었다. 국어 40점, 수학 50점, 도덕 60점, 도무지 말이 아닌 점수였다. 분명히 뭔가 착오가 있는 듯싶었다. 그래서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제 성적표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선생님은 버럭 화를 내셨다. 동시에 큰손으로 내 뺨을 쳤다. 나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서 있었다. ‘선생님이 왜 이렇게 화를 내실까?’
이번에는 한쪽 귀를 잡고 교실로 끌고 갔다. 교실에는 방과 후라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선생님은 또다시 가마솥 같은 손으로 뺨을 때리고 발로 찼다. 무슨 분노가 그리도 컸는지 급기야는 주산으로 내 얼굴을 내리쳤다.
얼굴과 온몸에 피가 줄줄 흘러 피범벅이 되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들고 있는 성적표에 피가 묻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표를 한쪽 손으로 가리면서 피할 틈도 없이 맞았다. 너무 억울하고 분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울면서 고개를 넘고, 또 넘어 집으로 왔다. 우리 집은 고개 두 개를 넘어야 했다. 집에 와보니 아버지께서는 큰 가마솥에 불을 때고 계셨다.
▶다음호에 계속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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