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는 가을의 기운이 제법 느껴지는 날씨다.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이기에 끝나지 않을 더위가 큰 태풍과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년도의 변화를 느끼며 각자 가지고 있는 인생의 달력도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앞으로 남은 달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무료하고 때론 지루하지만 건너뛸 수 없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시시한 일상이 우리를 구한다”는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친 류호준 교수가 지은 책이다. 류 교수는 어려서부터 성경과 교회를 사랑하다 마침내 신학자와 목회자가 되었다. 미국 캘빈신학대학원(M.Div., Th.M.)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Dr. Theol.)에서 공부했다.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25년을 가르쳤고, 미국 오하이오 톨레도 한인교회와 한국 평촌 무지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도합 25년을 목회했다. 이 책은 신앙생활의 여러 문제에 대해 텍스트 해석에 그치지 않고, 일상과 신학 그리고 인생이 함께 춤추며 벌이는 삼중주를 역동적으로 소개한다. 각자도생으로 내몰린 이웃들의 일상에,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불안이 일상이 된 우리의 삶에 깊숙이 새겨진 하나님의 은총을 찾아내고 보여주고 있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루는 점진적인 삶의 구성을 통해 그저 하찮게 여기는 일상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일상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누어 각 장의 주제에 맞게 배분해 놓고 있다. 삶의 여정을 시작하여 우리의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결국에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저자가 책을 마무리 하며 기록한 본문을 한 구절 인용해본다. “순례의 길 한 가운데 있는 우리는 오히려 희망을 배우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삶에 의미와 힘을 공급하여 주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반음 정도의 희망이라도 갖고 살아야 할 이 세상, 이 세상이 아직 하나님 아들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상태라는 것을 생각하자 눈시울이 붉어진 것입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경우가 참 많다. 신앙인으로 경주자의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루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공급받는 물에 적신 스펀지나 물컵들이 긴 레이스 가운데 탈진하기 직전인 선수들에게 새 힘을 충전해 준다.
마라톤은 결승점이 어디 인지 코스를 알고 가는 여정이라서 목표를 잃지 않고 갈 수 있지만, 인생의 여정은 코스만 알 뿐 이 경주가 언제 마무리 될지 모르는 여정이다.
한편으론 이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에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든 주체는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 즉 풍성한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회 속에서 그분의 은총을 찾아내 일상과 일상 너머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관용적으로 외치는 주님의 은혜가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힘이 됨을 다시금 고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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