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 2026.10.08(목) 11:52
모든 사람의 주거권
미션21 phj2930@nate.com
2026년 10월 08일(목) 11:39
박창수 목사
·기독교학 박사 ·희년사회 목회신학위원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기독교경제학&사회윤리전공
레 25:31, “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은 나라의 전토와 같이 물러 주기도 할 것이요 희년에 돌려보내기도 할 것이니라.”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 곧 ‘성 밖의 농촌 주택’은, 토지와 마찬가지로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그 소유권이 아니라 그 사용권을 사고 팔 수 있고, 희년이 오기 전에 언제든지 무르기가 가능하다. 이것은 레위 지파를 제외한 채 성 밖의 토지를 평등하게 분배받은 이스라엘의 나머지 열 두 지파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다.
레 25:32-33, “32.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들의 소유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 33.만일 레위 사람이 무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유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보낼지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읍의 가옥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받은 그들의 기업이 됨이니라.”
“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들의 소유의 성읍의 가옥” 곧 ‘레위 지파의 주택’은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처럼 토지와 똑같은 법이 적용된다. 그래서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그 소유권이 아니라 그 사용권을 사고 팔 수 있고, 희년이 오기 전에 언제든지 무르기가 가능하다. 이것은 레위 지파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다.
레 25:35,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여기서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라”는 것은, 유리하는 사람에게 단순히 그 지역에 사는 것을 허락한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유리하는 사람에게 거처할 집을 제공한다는 적극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돕다’(하자크)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유리하는 사람에게 단순히 그 지역에 사는 것을 소극적으로 허락할 경우 그것을 ‘돕다’라는 단어로 표현하지 않고, 그 대신 유리하는 사람에게 거처할 집을 적극적으로 제공할 경우 그것을 ‘돕다’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라”는 말씀이, 유리하는 사람에게 단순히 그 지역에 사는 것을 허락한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유리하는 사람에게 거처할 집을 제공한다는 적극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욥의 항변에 의하면 그는 나그네에게 집을 제공했다. 욥 31:32,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욥처럼 나그네에게 집을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이다.
유리하는 빈민에게 거처할 집을 제공하는 것은 이사야서의 희년 연관 본문인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본문에서도 등장한다. 사 58:7,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여기에서 유리하는 빈민에게 거처할 집을 제공한다는 것은 영구적으로 집의 소유권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집의 사용권을 준다는 의미이다.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라”는 말씀은,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극빈층을 홈리스 상태에 내버려 두지 말고 맞아들여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희년 주택법은 요컨대, 나그네들의 주거권, 이스라엘 12지파의 주거권, 레위 지파의 주거권, 극빈층의 주거권 등 한 마디로 이스라엘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미션21 phj2930@nate.com
독자 의견 (0개)
이 름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