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오랜 여름의 열기가 복도를 데워 놓은 아침, 우리는 서로의 이름표를 확인하며 한 자리에 모였다. 제51차 CBMC 한국대회는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창세기의 명령을 숫자의 곡선이 아닌 영향력·회복·질서의 언어로 다시 읽어 냈다.
개회식의 환호성과 함께 기수단이 입장하고, 개회 선언과 기도로 문이 열리자, 대회장은 곧 ‘축제의 언어’를 배웠다. 사흘 내내 이어진 프로그램은 각기 다른 색채를 지녔으나, 하나의 선율로 엮였다. 개회 예배의 엄숙함, 아침의 성경 읽기가 남긴 침잠, 저녁 집회의 선포가 일으킨 떨림, 폐회 예배의 결연함까지-모든 순간은 쉼과 힐링, 재충전과 재무장, 그리고 재파송이라는 다섯 개의 호흡으로 들고 났다. 강단에선 말씀이 흐르고, 회중에선 응답이 자라났다. 서로의 어깨에 얹힌 손이 기도였고, 그 손끝으로 전해지는 체온이 위로였다.
해외 한인 CBMC의 사역 소개는 우리 시야를 대륙의 곡선으로 넓혔고, 문화예배는 말로 전하지 못한 부분을 노래와 몸짓으로 번역해 주었다. 무대 뒤에서 큐시트를 붙잡고 있던 실무자들의 침묵이 공연의 매끄러움이 되었고, 복도의 작은 환대가 낯선 이들의 마음을 풀어 주었다. 문화예배는 단지 공연의 나열이 아니라, 세대와 장르를 넘어 회중을 하나로 묶는 공용어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라며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지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하이원리조트(강원 정선군 고한읍 하이원길 424)에서 2박3일 동안 열린 제51차 CBMC한국대회의 이모저모를 세차례로 걸쳐 게재한다. / 편집자 주


환대의 온도, 사랑의 디테일·문화예배가 만든 ‘하나 됨’
ABBA 뮤지컬 합창·중창·독창, 무대 뒤의 땀과 기술
“감동은 무대에서 시작했지만, 은혜는 무대 뒤에서 완성됐다”


▷ABBA: 아바(광야아트미니스트리)
문화예배의 문을 연 것은 뮤지컬 〈아바〉였다. 51년 CBMC 한국대회 역사상 처음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 요나와 탕자가 한 무대에서 만났고, 떠난 아들과 부르심을 피한 선지자, 그리고 곁에 있었으되 마음은 멀었던 큰아들이 한 장면에 포개졌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추적했고, 회당처럼 고요하던 객석은 어느 순간 회심의 방이 되었다. 배우들의 노래와 춤, 영화적 영상과 음향이 관객을 서사의 강으로 데려갔고, 우리는 물 위에서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뮤지컬이 끝난 후, 커튼콜을 할 때 우레와 같이 박수가 쏟아졌다. 노심초사했던 염려가 보람으로 밀려왔다. 광야아트미니스트리 김관영 대표가 합심기도를 인도하면서, “아빠”라고 외치자고 할 때 타락한 탕자와 교만한 큰아들, 불순종했던 선지자 모두가 아버지의 너른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그분의 영원하신 사랑에 나의 시선을 고정하며 살리라.
▷Soprano 정혜린(서울대학교 박사과정)
그녀는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라는 문장을 노래로 증명했다. 가사의 한 줄, 한 줄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세마포 같은 정결한 울림을 짰다. 어떤 음은 빛처럼 번져 회중의 눈시울을 적셨고, 어떤 음은 바람처럼 지나가며 우리의 오래된 굳은살을 스쳤다. 노래가 끝났을 때, 우리는 알았다. 방금의 순간이 보좌 앞이었다는 것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은 그의 찬송이 하나님께서 흠양하실 찬양의 제사가 되었다.
▷콜링콰이어(세계 합창단대회 가스펠부문 대상)
군무의 각도와 하모니의 결이 하나의 복음 번역본처럼 눈과 귀에 들어왔다. 리듬의 첫 박에서 마지막 페르마타까지, 그들은 복음을 소리와 몸으로 현재형으로 만들었다. 한류가 왜 세계를 정복하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한 무대였다. 세상의 어떤 화려한 무대보다 찬양하는 이 자리에 섰을 때,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는 간증은 세상 한복판에서도 우리가 있어야 할 정위치를 알게 했다.
▷사무엘 윤 교수(서울대학교·독일 궁정 가수 Kammersanger)
그의 동굴 저음은 홀의 바닥을 만들었다. 세계 최고 무대의 내공이 겸손을 만나면, 소리는 기교가 아니라 기도가 된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료 레슨을 전하며, 사랑이 사랑을 불러 작은 천국이 일상에 열렸다고 담담히 말했다. 세 곡의 찬양이 끝나자, 객석은 기립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손을 모았다. 최고의 소리는 박수로 소비되기보다, 감사로 봉헌되기 때문일 것이다.
▷CCC워십허브·연합중창 (피데스콰이어, CBMC대전중창단·전북중창단·서울콰이어)
다른 색의 목소리가 한 방향을 향할 때, 조화는 단순한 감탄을 넘어 도시의 문화가 되었다. 대회 내내 CCC 워십허브는 예배의 템포를 잡아 주었다. 프레이즈가 높아질 때는 용기를, 잦아들 때는 쉼을 선물하며, 말씀과 간증 사이를 찬양의 강으로 이어 주었다.
▷관객의 응답: ‘공감’이 ‘고백’이 되는 순간
문화예배가 ‘공연’을 넘어선 지점은 관객의 반응에서 확인됐다. 박수는 단지 리듬이 아니라 동의의 신학이었고, 눈물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회복의 신호였다. 특히 주제가를 함께 부르는 장면은, ‘구경하는 관객’이 ‘고백하는 회중’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Prologue
등록 데스크의 첫 미소, 동선 안내의 손짓, 조명감독의 한 박자 앞선 손가락, 음향의 숨 고르기, 무대 감독의 침착한 카운트, 자원봉사자의 친절함까지-대회의 품격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쌓아 올렸다. 올해도 본 대회와 자녀 캠프(유치부·초등부·중고등부)가 동시에 운영되었다. 예배 시간마다 다른 공간에서 아이들을 품어 주고, 놀이와 말씀, 안전과 위생을 지켜 낸 교사·도우미들의 수고는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전선이었다. 작은 손을 잡아 주고, 울음을 달래고, 간식을 나르는 그 시간들이 부모의 마음을 예배에 온전히 머물게 했다.
또한 정갈한 식사와 깔끔한 숙소는 참가자들의 체력을 지켜 주는 든든한 울타리였다. 과하지 않되 성의가 있는 식단, 피곤이 누적되지 않도록 신경 쓴 침구와 온도-이 모든 섬세함이 은혜의 바탕을 다졌다. 숙소와 행사장을 오가는 셔틀버스도 고마운 일이었다.
이번 대회의 진정한 챔피언은 유명한 강사도, 화려한 무대도 아니었다. 어디서나 조용히 빈틈을 메우던 숨겨진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을 것이다. 이렇게 성실한 작은 불씨가 큰불을 일으켰다. 큰 제단 위 거대한 불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들로. 대회가 막을 내릴 때, 우리는 알았다. 하나님 나라의 시간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작은 순종의 반복임을. 다음 2호에는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연재할 예정이다.

미션21 phj293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