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우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이하며, 그 숭고한 희생과 정신을 다시금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역사적 분기점에 서 있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군부독재에 맞서 자유와 정의,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이는 단순한 지역적 저항이 아닌,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지킨 국민적 항쟁이었으며,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의 정의와 연대, 저항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45년이 지난 오늘, 5·18 정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왜곡되고 부정되는 역사,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혐오와 배제의 언어, 그리고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아픔이 아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신앙과 사회의 위기이며, 한국 교회 역시 이 역사 앞에 응답해야 할 소명이 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의 피로 물든 현실을, 한 소년의 시선을 통해 깊고 처절하게 드러낸다. “나는 죽음을 보았다. 그 속에서 울고 있는 생명을 보았다.”는 문장은, 억눌린 이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외면했던 모두에게 던지는 침묵의 경고이자 양심의 울림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존엄이 가장 잔인하게 짓밟혔던 순간에도 사랑과 연대가 어떻게 기적처럼 피어날 수 있는지를 증언한다. 교회는 이 시대의 ‘소년’들 억눌리고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고통에 함께 울어주는 영적 감수성과 정의감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의 책무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기억의 공동체로서의 책임이다. 교회는 5·18을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한 인간의 용기와 희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예배와 교육, 기념행사 속에서 5·18 정신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계승해야 한다.

둘째, 고난받는 이웃과의 연대이다. 5·18 정신은 고통받는 자와 함께한 시민들의 연대였다. 교회는 사회적 약자, 억눌린 자,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서는 예언자적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시혜가 아닌, 복음에 근거한 실천적 정의의 외침이다.

셋째, 화해와 평화의 사역이다. 교회는 분열이 아닌 통합의 언어로 세상에 응답해야 한다. 5·18의 진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하려는 세력에 맞서 진실을 말하되, 증오가 아닌 사랑과 회개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복음의 본질은 회복과 화해이며, 교회는 그 길의 선두에 서야 한다.
더 나아가 이제는 광주 오월 정신의 세계화라는 비전을 품을 때다. 5·18은 단지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사건이 아니라, 세계 시민사회가 귀 기울일 만한 인류 보편의 가치·저항과 연대, 생명과 평화를 담고 있다. 광주는 아시아의 다른 민주화 운동과 인권 투쟁, 전 세계 억압받는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고통 속에서 피어난 민주주의'의 세계적 상징이 될 수 있다. 교회는 이 오월 정신을 세계 교회와 인권 네트워크, 다음 세대와의 연결을 통해 복음적 관점에서 확장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진실을 외면한 신앙은 거짓이고, 정의에 무관심한 경건은 위선이다.
5·18 45주년을 맞는 이 시점, 교회는 역사의 부름 앞에 응답해야 하며, 복음의 빛으로 이 땅의 어둠을 밝히는 공동체로 다시 서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교회의 진정한 부흥이며, 순교의 땅 광주가 한국 교회에 던지는 영적 각성의 외침이다.

미션21 phj293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