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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세월에 707명
미션21 phj2930@nate.com
2025년 03월 11일(화) 15:41
박주정
한국교원대학교 연구교수
1994년부터 2003년까지 10년의 세월! 707명이 공동학습장에서 살았다.
나는 남모르게 많이도 울었다. 학생들이 고통받고 상처받은 일로 고민할 때 함께 울었다. 그들이 내 진심을 이해 못 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탈선할 때 울었다. 학생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기뻐서도 울었다. 그리고 긴 세월만큼 주변의 많은 오해들이 조여올 때도 제자들만 보면서, 언젠가는 진실을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의 길을 울면서 걸어왔다.
늦은 밤, 선생님 하면서 불쑥 찾아온 옛 제자들과 함께 대학 생활이며, 다니고 있는 직장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편안하고 좋았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갈 곳은 뻔했습니다. 지금쯤 교도소 아니면 조폭으로 아직도 인생 밑바닥을 헤매고 있을 겁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말하면서 빠지지 않고 나온 말이다.
닭죽에 소주 한 잔 나누며 제자들과 되돌아보는 달밤의 대화, 교사가 아니면 겪어보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다.
누군가 인생은 여행이라고 했다.
젊은 교사 시절, 내 인생 여행은 참으로 즐거웠다.
이 길을 나에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는 세상에서 행복한 부자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를 찾아온 수백 명의 제자들!
한꺼번에 다 올 수가 없어 릴레이로 줄을 서서 찾아온 나의 제자들!
꽃다발을 가져와서 눈물과 함께 내려놓고 병실을 나가는 제자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울었다.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다는 자족감의 눈물이고, 제자들에 대한 감동의 눈물이었다.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가정은 인생의 보금자리다. 옛날 어른들 말씀에 집안이 편해야 밖에서 하는 일도 잘된다고 했다. 공동학습장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빨래도 하고, 음식 요리도 하고, 라면도 숱하게 많이 끓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에만 들어오면 손끝 하나 거들어 주지 않았다. 그만큼 아내를 믿는 구석도 있었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했다 싶다. 가족들에게도 주말이면 외식을 한다거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한다거나 이런 것은 없었다. 아내에게 그 흔한 선물 한 조각도 해준 적이 없다. 그러나 항상 아내는 못난 남편을 이해하고 격려해주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것이 아내의 덕분이다. 학생들에게는 친누나 같고, 언니 같고, 때로는 어머니 같았던 내 아내이다. 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이 글에서만큼은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내의 성원이 있기에 오늘도 제자들과 함께 교육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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