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친구는 수없이 “미친 놈”이라는 단어를 반복했습니다.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티켓팅해 서울로 올라갈 기세였는데 만약 빠른 비상계엄해제가 국회로부터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서울로 갔을 것입니다. 친구에 비해 전 그의 분노에 간간히 맞장구만 치며 조용히 티비를 시청했습니다.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마치 진지한 코메디 같은 해프닝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실시간 뉴스를 보다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비상계엄령은 160여 분 만에 해제되었고 윤석열 씨는 국무회의를 통해 비상계엄령해제를 승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비상계엄령 선포의 이유를 야당의 폭거에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새해 예산 삭감과 감사원장, 검사들에 대한 탄핵을 감행하는 야당이 북한 공산주의에 경도된 불순세력이기에 반드시 그 뿌리를 뽑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의미입니다.
제 개인 SNS를 보니 몇몇 보수 성향의 페친이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를 환영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군부대가 동원되고, 국회를 점령하고, 주요 야당 인사와 언론인들을 체포하여 가두고, 언론을 통제함으로 국가 전제를 마비시키는 계엄령을 환영한다는 글과 그 이유를 종북 좌파, 불순세력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까지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국가 전복 시도나 전쟁 발발과 전시에 준하는 사태가 아닌 정치적 힘겨룸의 수세에 몰린 대통령의 계엄령을 환영하다니 참 황당한 궤변이고 상황 인식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의 성경 해석과 설교는 어떨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왜 그들은 계엄령에 대해 준엄한 인식이 적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 그들은 계엄령이 주는 공포를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오히려 안전감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실제 전쟁 발발이나 내란에 의한 계엄령도 매우 공포적이며 살벌한데 이번과 같은 권력 유지를 위한 친위쿠테타는 더 잔인합니다. 왜냐하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45년 전의 군사 쿠테타가 그랬습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어떤 방어도 불가능하게 국회와 언론을 점령하고 군사력을 동원하는 계엄령은 전시의 적과 같은 위치로 정적 또는 비판 언론을 취급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고, 모든 것이 통제된 가운데 살얼음 같은 일상이 시작됩니다. 게다가 타겟이 된 대상이나 특정 지역은 공포의 시간을 지내게 됩니다. 계엄령 군부에 끌려가자마자 며칠간 아무 이유 없이 두들겨 맞기만 한 기억이 좋을 리 없습니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시위에 나갔다가 군인들의 곤봉에 두들겨 맞고 피를 흘린 기억도 그렇고, 그 현장을 목격한 이들, 완전군장을 한 훈련된 군인들을 마주하거나 저 멀리서 그 위세를 본 이들의 오금저림도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특히 광주 시민들은 45년 전의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때 죽고, 다치고, 갇히고, 맞고, 감시당하고, 피해를 받았던 이들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빚을 졌습니다. 2024년 12월 3일의 경험이 다시 과거를 소환했습니다. 오늘보다 더 엄혹하고 잔인했던 그때에 그곳을 지키던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결과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를 경험하지 못했을 지라도 과거에 빚 진 이들이 동일한 두려움과 떨림을 딛고 용기를 내기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수호요 자유를 얻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와 동일하게 우리는 엄혹한 세월을 지낸 신앙 선배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목숨으로 지킨 신앙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다시 그런 상황이 된다면 목숨으로 신앙을 지켜야겠지만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자유인으로서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해야 할 일입니다. 과거에 빚진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미션21 phj293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