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쿠오바디스(Quo vadis)”를 쓴 쎈키비치(Sienkiewicz, Henryk 1846-1916)의 작품 중에 “흑암 속에 비치는 빛”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가미옹카”라는 조각가가 어둠침침한 작업실에 누워있었다. 오랜 병으로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서 낡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이때 가미옹카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갑자기 창문 밖으로부터 강한 광채가 휘몰아 들어오더니 작업실 안에 우중충하게 늘어서 있던 먼지 묻은 조각들을 삽시간에 녹여 없애버리고 계속해서 이 광채는 때 묻은 낡은 벽돌들을 철거시켜 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답답한 천장과 방바닥까지 깨끗이 일소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몸은 완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가미옹카는 시원한 하늘에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언덕 기슭에 한 마을이 보이고 회벽을 친 낡은 집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집 창가에 누워있는 한 비참한 인간을 보았다. 입을 쩍 벌리고 이미 굳어진 시체였다. 그리고 그 시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품의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작가는 자기 자신의 객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자신이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을 그려본 것이다. 자기의 현실과 비참함과 자기의 송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희랍 신화에 미소년 나르시서스(Narcissus)가 나온다. 그는 자기 얼굴이 하도 예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못에 비친 자기의 그림자만을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자기의 그림자에 미쳐 연못에 뛰어들어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수선화(水仙花)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의 Narcissus는 수선화를 뜻하며, 여기서 “Narcissism”이라는 말이 나왔다. 나르시시즘은 자기도취증(自己陶醉證), 혹은 자기애(自己愛, Eros)를 의미한다(최효섭, “너희 속에 소금을 치라”에서 인용). 자기 자신에게 애착을 느끼는 현상이다. 열등감을 갖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기에게 반하여 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병적 나르시시즘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도취나 자기애에 빠져서 자기를 객관화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에게 반성이나 참회나 회개가 이루어질 수 없다.
셉나는 권력지향주의자로 출세는 했으나 자기를 내다보는 창문이 없었다. 셉나는 자기에게 토지가 없는 것을 알았다. 고대 중동에서는 자기가 죽은 후 들어갈 자기 묘지가 있는 사람만이 귀족과 명문가로 우대를 받았다. 셉나는 출세했으나 귀족가문이 아니다. 자기가 죽으면 기드론 골짜기 일반묘소에 들어가야만 했다. 살아있을 때는 우대와 존경을 받고 있는데 죽어서는 천대를 받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가문을 높이고 귀족들과 함께 묻히고 싶었다. 권력을 쥔 자의 열등감이다. 그래서 권력을 자기 개인을 위해서 악용했다. 힘 있는 자가 권력을 악용하고 자기 개인을 위해 쓰는 것은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권력의 사유화를 매우 싫어하신다. 권력은 오직 정의롭고 공평해야 한다.
마침내 그는 높은 지대에 자기 호화묘지를 마련하였다. 오늘날의 가진 자들이 만들어 놓은 호화묘지와 같은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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