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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의 ‘떠나가는 배’일제강점기 고향 떠나는 비애 노래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 윤상원 열사 마지막 연설
“민주주의 위해 저들의 총탄에 죽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
원당산 공원 전망대, 수완지구·광주 시내 전경 한눈에

미션21 phj2930@nate.com
2021년 12월 03일(금) 11:31
박용철 시인_떠나가는 배
■ 김경배 목사가 소개하는 가보고 싶은 곳 -박용철 생가·풍영정, 그리고 윤상원 열사 생가

▲용아 박용철 생가

062)944-1340, 해설가능, 광산구 소촌로46번길 24(소촌동).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3호(1986.02.07 지정)1995년 문화재 복원 사업을 실시, 초가지붕으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초창기 시단을 빛낸 시인 용아 박용철(1904∼1938) 선생의 생가. 선생은 이곳에서 새로운 문명을 소개하고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 서재 등이 남아 있고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높다란 막돌 기단 위에 세웠다. 이 집은 용아의 고조부가 지었다고 전해지나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계절마다 상사화와 배롱나무꽃이 피고 진다.
박용철 선생은 광주 공립 보통학교와 서울의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동경 청산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김영랑과 사귀게 되었다. 졸업 후 다시 외국어학교 독문과에서 수학한 후 연희전문학교를 수학하고 고향에 돌아와 문학활동에 전념하였고 김영랑, 정지용, 정인보, 변영로 등과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문예월간」을 창간하여 외국문학을 소개하였고 1931년에는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순수시 전문지인 「시문학」을 발간하여 창간호에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등을 발간하였고, 극예술연구회의 동인으로 신극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외 시의 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정열적이고 남성적인 그의 시세계는 30년대 서정시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1938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가족과 함께 산책하듯 둘러보기에 좋은 곳으로 추천하며 일제강점기의 현실에서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의 비애를 담고 있는 시 <떠나가는 배>를 생가마당 왼쪽에서 만나게 된다.
이 시는 가수 김수철이 노래한 ‘나도야 간다’라는 노래로 만들어 사랑을 받은 곡이기도 하다.

▲풍영정

광주광역시 광산구 풍영정길 21,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
봄, 가을로 찾아가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신창동 선창산과 극락강이 마주치는 강변의 대지 위에 위치해 있다. 풍영정은 명종 15년(1560년) 승문원 판교를 끝으로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김언거(金彦据)가 지은 정자이다. 여기서 그는 7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여년 동안을 김인후, 이황, 기대승 등 이름난 문인들과 교우하며 지냈다. 풍영정에는 유독 많은 편액들이 남아 있고 그 중〈제일호산(第一湖山)〉이라는 편액은 명필 한석봉이 쓴 것이다. 김언거(1503∼1584)의 본관은 광산으로 지금도 광산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어 입구의 연락처로 연락한 후 둘러볼 수 있다.

▲원당산공원, 전망대

광산구 장덕로96-15(장덕동1295)
광산구 수완동은 평균 나이 31세의 젊은 도시인데 잘 짜여진 도시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최고의 도시이다. 수완지구 중앙에 위치한 원당산공원은 넓고 낮은 구릉형태의 원당산에 조성된 공원으로 풍영정천을 따라 원당산까지 이어진 산책로가 멋진 공원이다. 특히 수완지구 중심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고 오밀조밀 잘 가꾸어진 공원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나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입구엔 원당산청소년문화의 집도 함께 있다.
데크계단을 따라 걷다보면 다양한 조각작품들과 생태놀이터와 쉼터도 만나게 되고 조금 더 올라가면 원당산전망대가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수완지구와 광주시내를 한 눈에 조망하면 좋다. 초겨울의 가족나들이 장소로 추천한다.

▲윤상원 열사 생가

광산구 천동길46(신룡동570-1)
1480년경 생긴 천동마을에서 조금 더 골목길을 올라가면 윤상원열사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윤상원 열사는 임곡에서 초,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에서 고교, 대학을 졸업한 후 주택은행에 근무하다 광주로 내려와 야학을 운영하며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5.18민주항쟁 당시 시민군대변인으로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다 목숨을 잃었으며 윤상원은 영화<화려한 휴가>의 실제 주인공이다. 생가로 들어서면 ‘주인이 없더라도 보고 가십시오’ 라는 문구가 보이는 ‘해파제’라는 자료전시관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윤상원 열사의 일대기와 자료, 또한 박기순 열사와의 만남의 기록들도 보인다. 1980년 5월27일 새벽 도청에서의 마지막 연설은 이렇게 울려 퍼졌다.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해도 그것이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우리 앞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이분들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진정 소중함을 다시금 깊이 되새기며 윤상원 열사의 여동생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돌아선 오후였다. 담장에 선명한 글귀가 가슴을 울린다.

‘불어라 평화의 바람’

※코로나19로 인한 여행지 관련 사전문의 필수입니다.
박용철 시인 생가 앞에서
원당산공원 전망대
윤상원 열사 생가 노래비
풍영정 전경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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