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화진과 양림동”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5년 10월 01일(수) 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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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고 있는 크리스천이다. 기독교의 교리를 따르고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지금은 기독교가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신뢰가 약하여 참 곤욕스럽다. 대한민국의 수만은 복지와 봉사와 헌신은 압도적으로 많이 하는데 극우선동가들과 또 성도들이 바른 신앙생활이 부족하여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고 외면 받는 것이 현실이고 또 마음이 아프다. 누가, 언제, 아시아의 서쪽 끝 이스엘의 신, 하나님을 우리나라에 전해 주었을까? 어렸을 때 ‘언더우드’라는 선교사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광주 양림동에서 유진벨과 오웬선교사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미국 선교사는 알렌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알렌은 선교사로의 일 보다는 미국공사의 역할이 많았다. 1885년 4월 5일 독신으로 인천제물포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한 북장로회의 언더우드(1859-1916)선교사와 그의 가족은 4대에 걸쳐 복음을 전해 준 것으로 전해진다. 도착하여 제중원에 근무를 하였고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창립하였다. 한국최초의 장로회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설립하였다. 세브란스 병원 건립에도 언더우드의 공이 컸다. 경신학교로 시작된 학교는 나중에 경신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고 나중에 연희전문학교 그리고 나중에 연세대학교로 발전하였다. 과로로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에서 치료를 받으며 요양하였으나 2016년 10월 16일 57세의 나이로 소천하게 된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한국이름이 ‘원두우’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문을 보아야 한다. 2대로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는 한국이름이 ‘원한경’이다. 3대는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주니어는 한국이름 ‘원일한’이다. 4대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 주니어는 한국명 이름이 ‘원한광’이다. 언더우드 가문의 역사가 있는 비석은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어 있다.
북장로회에 언더우드 가문이 있다면 10년 늦게 1895년에 조선에 들어온 남장로회에는 유진벨 가문이 있다. 유진벨의 한국이름이 ‘배유지’이다. 1897년 나주선교부를 만들었으나 결국 철수하고 1898년 오웬선교사와 함께 목포선교를 시작한다. 영흥학교, 정명학교를 시작하였다. 1904년 광주에서는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 숭일학교, 수피아학교를 시작했다. 잉그램 위더스푼과의 자녀인 샤롯은 남장로회의 최연소 선교사로 21세 방한하여 선교를 시작한 윌리엄 린튼과 결혼하게 된다. 4명의 자녀가 있고 3남인 인휴는 6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호남지역에 600여 개의 교회를 세우고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조선과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추방당했다가 해방 후 다시 입국 4대째 대한민국을 섬기게 된다. 1995년 유진벨재단을 통해 북한을 섬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선교사 50분이 양림동인 호남신학대학교 동산인 ‘양림동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다.
두 가문 외에도 크레인 가문도 있다. 언더우드 가문에 비해 린튼가문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양화진을 방문한 수많은 순례자들이 양림동도 방문하였으면 좋겠다.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고 소개 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미국 선교사는 알렌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알렌은 선교사로의 일 보다는 미국공사의 역할이 많았다. 1885년 4월 5일 독신으로 인천제물포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한 북장로회의 언더우드(1859-1916)선교사와 그의 가족은 4대에 걸쳐 복음을 전해 준 것으로 전해진다. 도착하여 제중원에 근무를 하였고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창립하였다. 한국최초의 장로회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설립하였다. 세브란스 병원 건립에도 언더우드의 공이 컸다. 경신학교로 시작된 학교는 나중에 경신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고 나중에 연희전문학교 그리고 나중에 연세대학교로 발전하였다. 과로로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에서 치료를 받으며 요양하였으나 2016년 10월 16일 57세의 나이로 소천하게 된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한국이름이 ‘원두우’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문을 보아야 한다. 2대로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는 한국이름이 ‘원한경’이다. 3대는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주니어는 한국이름 ‘원일한’이다. 4대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 주니어는 한국명 이름이 ‘원한광’이다. 언더우드 가문의 역사가 있는 비석은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어 있다.
북장로회에 언더우드 가문이 있다면 10년 늦게 1895년에 조선에 들어온 남장로회에는 유진벨 가문이 있다. 유진벨의 한국이름이 ‘배유지’이다. 1897년 나주선교부를 만들었으나 결국 철수하고 1898년 오웬선교사와 함께 목포선교를 시작한다. 영흥학교, 정명학교를 시작하였다. 1904년 광주에서는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 숭일학교, 수피아학교를 시작했다. 잉그램 위더스푼과의 자녀인 샤롯은 남장로회의 최연소 선교사로 21세 방한하여 선교를 시작한 윌리엄 린튼과 결혼하게 된다. 4명의 자녀가 있고 3남인 인휴는 6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호남지역에 600여 개의 교회를 세우고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조선과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추방당했다가 해방 후 다시 입국 4대째 대한민국을 섬기게 된다. 1995년 유진벨재단을 통해 북한을 섬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선교사 50분이 양림동인 호남신학대학교 동산인 ‘양림동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다.
두 가문 외에도 크레인 가문도 있다. 언더우드 가문에 비해 린튼가문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양화진을 방문한 수많은 순례자들이 양림동도 방문하였으면 좋겠다.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고 소개 하려는 것이다.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