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유지 선교사를 아시나요?”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5년 08월 20일(수) 13:07 |
|
|
나는 광주광역시 빛고을 광주 양림동에 살고 있다. 양림동을 역사문화마을 이라고 한다. 광주광역시가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라는 지명이었을 때 약 120년 전이다. 광주 최초의 선교사로 1904년 12월 유진벨 선교사 부부와 오웬 선교사 부부가 광주에 도착해 12월 25일 성탄절 예배를 드리며 ‘양림리교회’가 시작되었다. 광주에 도착하자 바로 최초의 근대식 제중병원을 시작하였고 1908년 2월 1일 남자학교인 숭일학교를 그리고 4월 1일 수피아여학교를 시작하였다. 목포와 광주 그리고 호남지역의 수많은 지역에 50여 개의 교회를 세워 조선을 섬겼던 유진벨 선교사를 기억하고 소개 하려고 한다.
1895년 신학대학교 학업을 마치고 결혼하여 27세 되는해 4월 조선에 도착한 유진벨은 한국이름이 ‘배유지’이다. 오자마자 매일 50-100명씩 콜레라로 죽어가는 조선의 백성들을 보살폈다. 1897년 나주선교부를 만들었으나 결국 철수하고 1898년 오웬 선교사와 함께 목포선교를 시작한다. 1901년 4월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으로 미국 고향에서 쉼을 갖고 재혼하여 다시 목포에 돌아와 1904년 광주로 발걸음을 향한다. 1919년 두 번째 아내를 잃고 1925년 방한 30년 만에 먼 이국만리 외국인 광주사택에서 자신의 전부를 조선을 위해 내어주고 한국나이 57세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양림동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다. 올해가 유진벨 선교사 선종 100주년이다. 선종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믿음의 선한 싸움(성경 딤후4:7)을 마쳤다는 뜻으로 선종이라 표현하였다.
나는 병원과 학교와 교회를 통해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 기간동안 30년을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유진벨 선교사님께 감사하고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자신의 나라의 안전과 보장을 포기하고 더 어려운 나라에서 평생을 바친 선교사님을 기억하려는 것이다.
광주 양림동에는 여러 개의 길이 있다. 대표적으로 ‘양림로’가 있고 ‘백서로’가 있다. 그리고 ‘제중로’와 ‘서서평로’ ‘오기원로’가 있다. 나는 ‘백서로’라는 길이 참 낯설었다. ‘무슨 뜻일까?’ 여러모로 알아봤지만 알 길이 없었다. 지도를 살펴보다가 ‘백운동’이라는 지명과 ‘서석동’이라는 양쪽에 동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백운동에서 서석동으로 가는 길이 ‘백서로’였다. 백서로는 양림동의 핵심 도로이다. 선교사님들의 수없는 발걸음이 닿았던 곳이다. 나는 ‘백서로’라는 이름보다 그 도로를 ‘배유지로’로 개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호남광주선교의 아버지’라 불렸던 배유지 선교사님은 남장로회의 선교지역으로 선교사 190여 명 중 광주에 선교사님으로 가장 빨리 왔었고 가장 오랬동안 사역하며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배유지 선교사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함이다.
이제 한 달 후 9월 28일이면 배유지선교사님 선종 100주년이다. 양림동은 역사문화마을이다. 양림동의 역사는 선교사님들의 역사가 가득이다. 유진벨 선교사님이 시작했던 제중병원은 광주기독병원으로 120년이 되었고, 세웠던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또한 120년이 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유진벨 선교사님의 정신을 더 많이 생각하며 걷는 길이 있었으면 한다.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1895년 신학대학교 학업을 마치고 결혼하여 27세 되는해 4월 조선에 도착한 유진벨은 한국이름이 ‘배유지’이다. 오자마자 매일 50-100명씩 콜레라로 죽어가는 조선의 백성들을 보살폈다. 1897년 나주선교부를 만들었으나 결국 철수하고 1898년 오웬 선교사와 함께 목포선교를 시작한다. 1901년 4월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으로 미국 고향에서 쉼을 갖고 재혼하여 다시 목포에 돌아와 1904년 광주로 발걸음을 향한다. 1919년 두 번째 아내를 잃고 1925년 방한 30년 만에 먼 이국만리 외국인 광주사택에서 자신의 전부를 조선을 위해 내어주고 한국나이 57세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양림동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다. 올해가 유진벨 선교사 선종 100주년이다. 선종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믿음의 선한 싸움(성경 딤후4:7)을 마쳤다는 뜻으로 선종이라 표현하였다.
나는 병원과 학교와 교회를 통해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 기간동안 30년을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유진벨 선교사님께 감사하고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자신의 나라의 안전과 보장을 포기하고 더 어려운 나라에서 평생을 바친 선교사님을 기억하려는 것이다.
광주 양림동에는 여러 개의 길이 있다. 대표적으로 ‘양림로’가 있고 ‘백서로’가 있다. 그리고 ‘제중로’와 ‘서서평로’ ‘오기원로’가 있다. 나는 ‘백서로’라는 길이 참 낯설었다. ‘무슨 뜻일까?’ 여러모로 알아봤지만 알 길이 없었다. 지도를 살펴보다가 ‘백운동’이라는 지명과 ‘서석동’이라는 양쪽에 동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백운동에서 서석동으로 가는 길이 ‘백서로’였다. 백서로는 양림동의 핵심 도로이다. 선교사님들의 수없는 발걸음이 닿았던 곳이다. 나는 ‘백서로’라는 이름보다 그 도로를 ‘배유지로’로 개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호남광주선교의 아버지’라 불렸던 배유지 선교사님은 남장로회의 선교지역으로 선교사 190여 명 중 광주에 선교사님으로 가장 빨리 왔었고 가장 오랬동안 사역하며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배유지 선교사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함이다.
이제 한 달 후 9월 28일이면 배유지선교사님 선종 100주년이다. 양림동은 역사문화마을이다. 양림동의 역사는 선교사님들의 역사가 가득이다. 유진벨 선교사님이 시작했던 제중병원은 광주기독병원으로 120년이 되었고, 세웠던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또한 120년이 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유진벨 선교사님의 정신을 더 많이 생각하며 걷는 길이 있었으면 한다.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