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소원은!”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4년 11월 29일(금) 1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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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교육청 학생 평화통일 체험 캠프 이틀째다. 초등학생 5-6학년 40여 명과 하루 종일 달려 고성 통일전망대와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박물관을 방문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더불어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한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 또한 갖게 되었다. 차량 이동간 들려오는 뉴스는 한반도 긴장과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상황들이 들려온다. 함께 슬픔도 밀려온다. 어른들이 하지 못하면 어린이 청소년들이 꿈을 꾸고 노력하면 된다. 우리 세대에 통일의 꿈이 현실이 되고 통일된 나라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되리라고 기대를 해본다.
프로그램 중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를 배웠다. 소원(訴願)은 어떤 일이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러 번 불러 보았다. 어린 청소년들은 대부분 처음 불러보는 노래라고 하면서 배웠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8번 나온다. 누가 언제 만들고 불렀는지 궁금해 검색해 보았다. 우리 국민이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의 동요 ‘우리의 소원’ 이다. 이 노래는 남과 북이 함께 만났을 때 남북이 하나 되자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거의 빠짐없이 부르는 노래다.
해방 후 혼란기 1947년에 어린이 노래극 노래로 탄생했다. 우리는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진정한 독립(獨立)을 이루지 못했다. 해방 이후 분단과 함께 극심한 이념적 대립을 겪었다. 서울대 음악대학 학생이던 21살의 안병원 은 ‘독립의 날’을 염원하는 어린이 노래극을 만들기로 한다. 예술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아버지 안석주 (1901~1950) 선생에게 노래극 작사를 부탁한다. 당시 소설, 삽화, 신문 만평 등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25분 분량의 노래극에 들어갈 다섯 곡의 노랫말을 만들었다.
이 다섯 개의 노래 중에 ‘독립의 노래’란 동요가 있었다. 우리가 모두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으로 불리워졌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가사 중 ‘우리의 소원은 독립’ 부분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고쳐 부르자고 제안했고 안병원 선생은 이를 받아들여 ‘독립’을 ‘통일’로 개사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도 우리 모두가 통일을 염원하며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탄생한다. 이후 ‘우리의 소원'은 초등학교 5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렸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노래가 됐다.
출처 : 통일과 미래(https://www.tongnastory.com)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나의 소원은 무엇인가?’ 소원이 있을 때 힘이 난다. 소원이 있을 때 용기가 생긴다. 나는 통일을 넘어 평화, 그리고 모두의 ‘행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모두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분단 국민인 우리의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이 ‘우리의 소원은’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통일을 위해 한걸음 다가간 느낌에 가슴이 뿌듯하다.
프로그램 중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를 배웠다. 소원(訴願)은 어떤 일이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러 번 불러 보았다. 어린 청소년들은 대부분 처음 불러보는 노래라고 하면서 배웠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8번 나온다. 누가 언제 만들고 불렀는지 궁금해 검색해 보았다. 우리 국민이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의 동요 ‘우리의 소원’ 이다. 이 노래는 남과 북이 함께 만났을 때 남북이 하나 되자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거의 빠짐없이 부르는 노래다.
해방 후 혼란기 1947년에 어린이 노래극 노래로 탄생했다. 우리는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진정한 독립(獨立)을 이루지 못했다. 해방 이후 분단과 함께 극심한 이념적 대립을 겪었다. 서울대 음악대학 학생이던 21살의 안병원 은 ‘독립의 날’을 염원하는 어린이 노래극을 만들기로 한다. 예술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아버지 안석주 (1901~1950) 선생에게 노래극 작사를 부탁한다. 당시 소설, 삽화, 신문 만평 등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25분 분량의 노래극에 들어갈 다섯 곡의 노랫말을 만들었다.
이 다섯 개의 노래 중에 ‘독립의 노래’란 동요가 있었다. 우리가 모두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으로 불리워졌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가사 중 ‘우리의 소원은 독립’ 부분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고쳐 부르자고 제안했고 안병원 선생은 이를 받아들여 ‘독립’을 ‘통일’로 개사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도 우리 모두가 통일을 염원하며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탄생한다. 이후 ‘우리의 소원'은 초등학교 5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렸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노래가 됐다.
출처 : 통일과 미래(https://www.tongnastory.com)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나의 소원은 무엇인가?’ 소원이 있을 때 힘이 난다. 소원이 있을 때 용기가 생긴다. 나는 통일을 넘어 평화, 그리고 모두의 ‘행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모두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분단 국민인 우리의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이 ‘우리의 소원은’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통일을 위해 한걸음 다가간 느낌에 가슴이 뿌듯하다.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