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하웨의 계획 (사 14:24-27)-2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4년 10월 25일(금) 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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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서 이어짐
앗수르 멸망에 대한 이사야 예언을 신명기 사가(史家)가 가필(加筆)하여 요시야 시대에 편집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이때는 이미 앗수르가 멸망하였다. 아하웨께서 계획을 세우시고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생각하신다. 25절은 짧은 구절인데도 동사가 집중적으로 나온다. 굳센 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동사가 모두 완료태이다. 미완료태는 하반절 ‘그것이 일어나리라.’뿐이다. ‘확정된다.’는 뜻이다. ‘맹세하였다.’(니스바, nifal) ‘생각하였다.’(디미티, piel) ‘계획하였다.’(야아쯔티, kal) ‘이루어진다.’(확정하다, 타쿰, kal 미완료태)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켄 하예타) 등이다. 부사 구실을 하는 ‘켄’이 나온다. ‘그렇게’이다. 말씀하신 그대로(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야하웨 쯔바오트께서 맹세하셨으니 그렇게 확정되고 이루어질 것이다. 억압받고 있는 유다 백성에게는 복된 소식이요, 희망의 메시지이다.
2. 이 세상의 강대국 앗수르의 횡포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폭정의 나라는 하나님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야하웨의 맹세’는 약소국을 보호하고 강대국 앗수르를 지상에서 없애버리신다는 단호한 의지 표현이다. 오리엔트 최강의 나라 앗수르의 자만(自慢)을 치시고 이방 민족들도 심판하신다. 군대들을 거느리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누구도 하나님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예언자는 ‘야하웨 쯔바오트’를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의 이방 민족들도 야하웨를 거슬려 대항하지 못한다. 야하웨 하나님은 ‘에레쯔 이스라엘’(이스라엘 땅)에 국한된 하나님이 아니다. 나라의 경계선을 넘으시고 앗수르까지 찾아가신다. 앗수르가 신봉하는 일월성신(日月星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록 본문은 짤막한 예언이지만 이사야의 웅대한 사상을 접할 수 있다.
14:22-23절의 이사야 예언은 바빌론을 치시고 멸망시킨다는 예언으로 확대된다. ‘내가 바빌론을 황폐화시켜 고슴도치의 소굴로 만들고 물웅덩이로 만들어 파멸의 절구공이로 만들 것이다’라고 예언을 선포한 후 다시 그의 신탁은 앗수르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25절에서 ‘그의 어깨’가 그리스 역본에는 ‘그들의 어깨 위에’로 복수형이다. 야하웨는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1인칭으로 말씀하신다. ‘나의 땅’(아르찌) 성지 이스라엘의 땅은 야하웨 하나님의 땅이다. 이 땅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예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스라엘은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땅에서 야하웨의 거룩하신 이름이 불리워져야 한다. 이름의 호칭은 예배드리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신명을 어기고 말씀을 거역하였다. 그래서 징벌을 받게 되었다. 그 징벌의 도구가 강대국 앗수르이며 바빌론이다. 이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압박을 가했다. 그러므로 이 나라들도 심판을 받아야 한다. 심판의 도구는 심판자에 의해 꺾인다. 이사야의 신앙의 확신이며 구원신학이다.
‘나의 산들’(하라이) 복수형이다. 하나님의 신전이 있는 예루살렘 산들이다. 고대 가나안 주신(主神) 바알 신도 북쪽(짜폰)의 산들이 그의 거처가 된다.
▶다음호에 계속
앗수르 멸망에 대한 이사야 예언을 신명기 사가(史家)가 가필(加筆)하여 요시야 시대에 편집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이때는 이미 앗수르가 멸망하였다. 아하웨께서 계획을 세우시고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생각하신다. 25절은 짧은 구절인데도 동사가 집중적으로 나온다. 굳센 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동사가 모두 완료태이다. 미완료태는 하반절 ‘그것이 일어나리라.’뿐이다. ‘확정된다.’는 뜻이다. ‘맹세하였다.’(니스바, nifal) ‘생각하였다.’(디미티, piel) ‘계획하였다.’(야아쯔티, kal) ‘이루어진다.’(확정하다, 타쿰, kal 미완료태)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켄 하예타) 등이다. 부사 구실을 하는 ‘켄’이 나온다. ‘그렇게’이다. 말씀하신 그대로(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야하웨 쯔바오트께서 맹세하셨으니 그렇게 확정되고 이루어질 것이다. 억압받고 있는 유다 백성에게는 복된 소식이요, 희망의 메시지이다.
2. 이 세상의 강대국 앗수르의 횡포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폭정의 나라는 하나님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야하웨의 맹세’는 약소국을 보호하고 강대국 앗수르를 지상에서 없애버리신다는 단호한 의지 표현이다. 오리엔트 최강의 나라 앗수르의 자만(自慢)을 치시고 이방 민족들도 심판하신다. 군대들을 거느리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누구도 하나님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예언자는 ‘야하웨 쯔바오트’를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의 이방 민족들도 야하웨를 거슬려 대항하지 못한다. 야하웨 하나님은 ‘에레쯔 이스라엘’(이스라엘 땅)에 국한된 하나님이 아니다. 나라의 경계선을 넘으시고 앗수르까지 찾아가신다. 앗수르가 신봉하는 일월성신(日月星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록 본문은 짤막한 예언이지만 이사야의 웅대한 사상을 접할 수 있다.
14:22-23절의 이사야 예언은 바빌론을 치시고 멸망시킨다는 예언으로 확대된다. ‘내가 바빌론을 황폐화시켜 고슴도치의 소굴로 만들고 물웅덩이로 만들어 파멸의 절구공이로 만들 것이다’라고 예언을 선포한 후 다시 그의 신탁은 앗수르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25절에서 ‘그의 어깨’가 그리스 역본에는 ‘그들의 어깨 위에’로 복수형이다. 야하웨는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1인칭으로 말씀하신다. ‘나의 땅’(아르찌) 성지 이스라엘의 땅은 야하웨 하나님의 땅이다. 이 땅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예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스라엘은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땅에서 야하웨의 거룩하신 이름이 불리워져야 한다. 이름의 호칭은 예배드리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신명을 어기고 말씀을 거역하였다. 그래서 징벌을 받게 되었다. 그 징벌의 도구가 강대국 앗수르이며 바빌론이다. 이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압박을 가했다. 그러므로 이 나라들도 심판을 받아야 한다. 심판의 도구는 심판자에 의해 꺾인다. 이사야의 신앙의 확신이며 구원신학이다.
‘나의 산들’(하라이) 복수형이다. 하나님의 신전이 있는 예루살렘 산들이다. 고대 가나안 주신(主神) 바알 신도 북쪽(짜폰)의 산들이 그의 거처가 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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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