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백성아! 앗수르를 두려워 말라(사10:24-27a)-3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4년 09월 13일(금) 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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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서
시온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노여움이 풀리고 앗수르를 향해서는 분노와 노여움을 터뜨릴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앗수르는 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서 앗수르는 멸망할 것이다.
예언자는 역사의 시점에서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한다(26절). 시나이 반도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이 능력에 대한 회고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 때 ‘갈대 바다’(홍해)가 갈라졌다(출14:30). 놀라운 기적이다. 그때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앗수르의 패배는 사사시대 미디안 약탈군에 대한 기드온의 승리처럼 그렇게 될 것이다(삿6-8장).
이스라엘의 승리는 극적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행동은 애굽에서 지팡이를 들게 하여 활동하셨다. 하나님의 진노의 ‘지팡이’로 앗수르는 무너지고 치욕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 앞에 전세(戰勢)는 역전된다. 예언자는 설레는 가슴으로 승리와 구원의 신탁을 전하고 있다. 유다는 신앙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된다.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실 것이다. ‘그날이 오면’ 대변혁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위하여 활동하실 것이다. 오늘이나 예언 전이나 변함없이 하나님은 이기 속에서 박해받고 고난 받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활동하며 ‘그날이 오면’에 희망을 걸었다. 역사의 완성자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손(능력)에 역사의 미래가 결정된다. 이스라엘의 공동체는 신앙을 회복하고 기다리면 된다. 기다림은 신앙으로 통한다. 그날이 임하면 ‘기름진 자 앞에서 속박의 멍에가 부러진다’. ‘기름진’은 ‘샤멘’이다. ‘기름지다’, ‘살지다’인데 강하고 넉넉한 데서 오는 자만(自慢)이다. 마음이 기름진 자를 구약성서는 교만한 자로 본다. 앗수르의 위력, 그 자만과 교만이 하늘에 닿았다. 군사력에 기름지고 교만한 앗수르의 억압에서 구원을 받는다. ‘목덜미의 멍에’는 속박에서 자유를 의미한다.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은 앗수르의 억압과 구속인데 이제 해방을 받는다. 오리엔트의 세계에서 고난을 받는 약소국가들 가운데서 시온에서만 복된 소식이 들려왔다. 선민만이 누릴 수 있는 해방이고 자유이다. 그러나 아직은 성취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예언자는 성취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신탁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소야는 역사적인 배경을 B.C. 701년경으로 보았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사방에서 포위, 공격하고 있을 때이다. 결국 앗수르 군대는 막대한 병력손실만 당하고 니느베로 철수했으며 예루살렘은 구원받았다. 이 전설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 이사야 36-37장에 기록되었다. 이 기사의 사실성을 역서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때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사람 예언자 이사야가 있었다. 그는 전란 속에서 희망의 예언을 하였으며 백성을 안심시켰다. 앗수르는 결코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산헤립은 철군했으며 얼마 후 니느베에서 쿠테타가 일어나자 실각 당했다. 예루살렘을 침공한 징벌을 받은 것이다. 유다는 히즈키야 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유다 왕국에서 그는 드물게 보는 선한 왕이었다. 아하즈와 달리 히즈키야는 이사야의 예언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현왕(賢王)이었다. 그는 선정을 베풀고 국토를 강화시켰으며 종교개혁을 단행, 아하즈 시대의 우상을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아하즈에게서 히즈키야와 같은 현명한 왕이 나왔다는 것은 유다를 위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나님은 히즈키야왕과 예언자 이사야가 있어 유다 왕국을 앗수르의 손에 넘기지 않고 나라의 수명을 더 연장시켜 주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나와 활동할 때까지 연장시켜 준 것이다. 주권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시온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노여움이 풀리고 앗수르를 향해서는 분노와 노여움을 터뜨릴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앗수르는 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서 앗수르는 멸망할 것이다.
예언자는 역사의 시점에서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한다(26절). 시나이 반도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이 능력에 대한 회고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 때 ‘갈대 바다’(홍해)가 갈라졌다(출14:30). 놀라운 기적이다. 그때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앗수르의 패배는 사사시대 미디안 약탈군에 대한 기드온의 승리처럼 그렇게 될 것이다(삿6-8장).
이스라엘의 승리는 극적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행동은 애굽에서 지팡이를 들게 하여 활동하셨다. 하나님의 진노의 ‘지팡이’로 앗수르는 무너지고 치욕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 앞에 전세(戰勢)는 역전된다. 예언자는 설레는 가슴으로 승리와 구원의 신탁을 전하고 있다. 유다는 신앙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된다.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실 것이다. ‘그날이 오면’ 대변혁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위하여 활동하실 것이다. 오늘이나 예언 전이나 변함없이 하나님은 이기 속에서 박해받고 고난 받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활동하며 ‘그날이 오면’에 희망을 걸었다. 역사의 완성자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손(능력)에 역사의 미래가 결정된다. 이스라엘의 공동체는 신앙을 회복하고 기다리면 된다. 기다림은 신앙으로 통한다. 그날이 임하면 ‘기름진 자 앞에서 속박의 멍에가 부러진다’. ‘기름진’은 ‘샤멘’이다. ‘기름지다’, ‘살지다’인데 강하고 넉넉한 데서 오는 자만(自慢)이다. 마음이 기름진 자를 구약성서는 교만한 자로 본다. 앗수르의 위력, 그 자만과 교만이 하늘에 닿았다. 군사력에 기름지고 교만한 앗수르의 억압에서 구원을 받는다. ‘목덜미의 멍에’는 속박에서 자유를 의미한다.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은 앗수르의 억압과 구속인데 이제 해방을 받는다. 오리엔트의 세계에서 고난을 받는 약소국가들 가운데서 시온에서만 복된 소식이 들려왔다. 선민만이 누릴 수 있는 해방이고 자유이다. 그러나 아직은 성취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예언자는 성취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신탁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소야는 역사적인 배경을 B.C. 701년경으로 보았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사방에서 포위, 공격하고 있을 때이다. 결국 앗수르 군대는 막대한 병력손실만 당하고 니느베로 철수했으며 예루살렘은 구원받았다. 이 전설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 이사야 36-37장에 기록되었다. 이 기사의 사실성을 역서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때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사람 예언자 이사야가 있었다. 그는 전란 속에서 희망의 예언을 하였으며 백성을 안심시켰다. 앗수르는 결코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산헤립은 철군했으며 얼마 후 니느베에서 쿠테타가 일어나자 실각 당했다. 예루살렘을 침공한 징벌을 받은 것이다. 유다는 히즈키야 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유다 왕국에서 그는 드물게 보는 선한 왕이었다. 아하즈와 달리 히즈키야는 이사야의 예언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현왕(賢王)이었다. 그는 선정을 베풀고 국토를 강화시켰으며 종교개혁을 단행, 아하즈 시대의 우상을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아하즈에게서 히즈키야와 같은 현명한 왕이 나왔다는 것은 유다를 위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하나님은 히즈키야왕과 예언자 이사야가 있어 유다 왕국을 앗수르의 손에 넘기지 않고 나라의 수명을 더 연장시켜 주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나와 활동할 때까지 연장시켜 준 것이다. 주권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