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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아! 앗수르를 두려워 말라(사10:24-27a)-2
미션21 phj2930@nate.com
2024년 08월 30일(금) 10:56
정형수 목사
아시아교회 담임 Mission Bible college & Seminary 대학원장
▶지난호에 이어서
본문의 내용은 이 시대를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예언자는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아!’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예언자 자신도 신앙으로 고무되었다. 그래서 능력의 상징인 ‘군대들을 거느리시는 야하웨’(야하웨 쯔바오트)를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천군(天軍)까지 호령하시는 야하웨 하나님만이 세계 최강대국 앗수르를 호령할 수 있다. 북조 이스라엘은 이미 패망했으며 앗수르의 영토로 병합되었다(예언자 이사야는 북조의 멸망을 지켜본 예언자이다). 국가로서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망하였다. 야하웨를 신앙하는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들, 소수의 무리들이 야하웨의 신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남하했으며, 예루살렘 변두리에서 살고 있었다. 왕궁을 멀리한(아하즈 왕가가 그의 예언을 거부하기 때문에) 이사야는 이들에게 희망을 걸었으며, ‘남은 자’(스아리트)로 보았다. 유다 역시 많은 영토를 잃고 시온을 중심해서 유다 일부만 살아남았다. 예루살렘은 멸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예언자의 의지요 신앙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민들에게 ‘내 백성’(암미)이라고 사랑의 음성으로 그들을 부른다. ‘알 티라’는 ‘두려워하지 말아라.’이다. 그는 유다 공동체를 한 묶음으로 보았다.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은 한 공동체이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한 단위로 보았다. 예언자는 아하즈에게 ‘믿음으로 굳게 서라’고 간곡히 권했으나, 아하즈는 이사야의 예언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아하즈는 자진해서 앗수르의 봉신이 되었고 앗수르의 문물과 종교문화를 예루살렘으로 수입하였다. 무능한 아하즈는 유다에 위기를 가져왔다.
믿음이 있어야 두려움이 사라진다. 두려움은 불신앙이다. ‘애굽의 방식대로’ 오늘 유다가 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옛날 애굽에서 환란을 당했으며 얻어터졌다. 약소 민족의 서러움이다. 지금은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다. 강대국 앗수르가 애굽을 대신해서 유다를 치고 있다. 불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다. 옛날 히브리 민족은 모세의 말을 듣고 신앙을 회복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도 지금 유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거부하고 불신앙의 길을 따라 걷고 있다.

2. 세베트(지팡이)와 맛테(막대기)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앗수르의 지팡이’(세베트), ‘애굽의 막대기’(맛테)를 사용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인간을 치고 때리는 도구도 되지만, 철권 통치, 폭력 정치를 의미한다. 지금 얻어터지고 있는 유다의 백성들에게 예언자는 낙심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만군의 야하웨께서 ‘시온의 거주민’을 지켜주실 것이다.
본문 7-8절에서는 주로 유다 왕 아하즈에게 예언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언을 거절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백성들인 ‘나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내 백성’은 결코 앗수르의 압제자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막대기나 지팡이가 위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앗수르는 야하웨의 수중에 있다. 이제 야하웨께서 대노하시면 그들은 끝장날 것이다. 앗수르는 하나님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옛날 애굽의 수중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해 내듯이 앗수르의 수중에서 시온을 구원하실 것이다. 폭압의 상징인 ‘지팡이와 막대기’는 하나님에 의해서 꺾어지고 부서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누가 뭐라해도 ‘나의 백성’(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본 바 있으며 이스라엘은 역사 민족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온은 위기 속에서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의 분노와 노여움’(25절) 하나님의 분노는 예언자의 분노가 된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까지 예언자는 간파하고 있다. ‘나의 분노’는 9:11절에 나온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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