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백성아! 앗수르를 두려워 말라(사10:24-27a)-1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4년 08월 14일(수) 1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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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야하웨 쯔바오트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아! 앗수르를 무서워하지 말아라. 지팡이로 너를 때리고 애굽의 길목에서 너를 향해 그 막대기를 들어올린다 할지라도 진정 잠시만 지나면(24) 나의 분노와 노여움이 그들을 멸망으로 절단나게 하리라. 그들을 거슬러 패망으로 끝장내리라(25).
오레브 바위에서 미디안 사람을 쳤듯이 그의 막대기를 바다 위에 애굽의 길목에서 들어 올렸듯이 야하웨 쯔바오트께서 그들을 향해 채찍을 드시리라(26).
그날이 오면 그 무거운 짐이 너의 어깨 위에서 벗겨지고 너의 목덜미 위에서 그의 멍에가 사라지리라. 기름진 자로부터 멍에가 부러지리라’(27a).”(私譯)
그날이 오면
앗수르가 발흥하여 오리엔트 세계에 그의 패권을 행사하게 되자 약소국들 중에서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유다도 예외는 아니다. 남쪽의 강대국 애굽까지 앗수르 제국을 두려워하였다. 앗수르의 부상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잔인하며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나라가 앗수르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죄 없는 약소국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어디서나 마음 내키면 죽였다. 승전국임을 자랑하듯이 자기 아이들 앞에서 포로들의 귀와 팔을 자르고 높은 데서 내던져 죽게 했다.
그들의 잔인성은 말할 수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포로민의 피 가죽으로 그들의 벽을 발랐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다의 멸망을 연기시켰으며, 앗수르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앗수르에게 넘겨주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야하웨 하나님께서는 신흥 바빌론을 일으켜 앗수르를 멸망시켰으며(B.C 609년경), 유다를 바빌론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래서 유다는 50년 후 돌아올 수 있었으며, 국가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이토록 두려운 나라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사야는 신탁을 전하였다. 앗수르의 운명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1. 알 티라(두려워하지 말아라).
10:24-27절에 나타난 예언자의 구원 신탁은 앗수르의 운명과 관계 지어졌다. 예언자는 앗수르 제국의 멸망을 내다보았다. ‘남은 자’가 돌아오듯이 예루살렘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여기서 앗수르의 운명을 논하는 4개의 짧은 문장이 나오고 있다.
첫째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는 모두 망할 것이다(10:20-23). 둘째는 예루살렘은 결코 앗수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10:24-27). 셋째는 야하웨 쯔바오트(군대를 거느리시는 야하웨)께서 가지를 꺾어 그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이 중 가장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네 번째이다. 예루살렘은 앗수르의 침략을 면할 수 있다는 예언자의 확신이다. 이사야는 다윗의 도성 예루살렘에 무한한 애착(愛着)을 가지고 있었으며 희망을 걸고 있었다. 다윗 왕국의 터전인 시온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사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사야 생전에는 예루살렘은 보호받았다. 이사야 사후 백 수십 년이 지난 다음 예루살렘은 바빌론 왕 느브가드네사르에게 멸망되었다(B.C. 587/6년경).
이사야가 활발히 예언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앗수르의 국력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으며, 약소국들은 계속 침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본문은 앗수르의 쇠퇴를 논하고 있어, 요시야 시대의 예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B.C. 640-609년경). 요시야 통치 시대에 앗수르는 그 힘을 잃기 시작했으며,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신흥 바빌론이 발흥하고 있을 때이다. 성급한 예언자 나훔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베의 멸망까지 내다보는 예언을 하였다. 이때 예루살렘은 완전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그래서 새 국가건설에 신뢰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루살렘은 고양(高揚)되고 있었다.
오레브 바위에서 미디안 사람을 쳤듯이 그의 막대기를 바다 위에 애굽의 길목에서 들어 올렸듯이 야하웨 쯔바오트께서 그들을 향해 채찍을 드시리라(26).
그날이 오면 그 무거운 짐이 너의 어깨 위에서 벗겨지고 너의 목덜미 위에서 그의 멍에가 사라지리라. 기름진 자로부터 멍에가 부러지리라’(27a).”(私譯)
그날이 오면
앗수르가 발흥하여 오리엔트 세계에 그의 패권을 행사하게 되자 약소국들 중에서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유다도 예외는 아니다. 남쪽의 강대국 애굽까지 앗수르 제국을 두려워하였다. 앗수르의 부상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잔인하며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나라가 앗수르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죄 없는 약소국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어디서나 마음 내키면 죽였다. 승전국임을 자랑하듯이 자기 아이들 앞에서 포로들의 귀와 팔을 자르고 높은 데서 내던져 죽게 했다.
그들의 잔인성은 말할 수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포로민의 피 가죽으로 그들의 벽을 발랐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다의 멸망을 연기시켰으며, 앗수르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앗수르에게 넘겨주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야하웨 하나님께서는 신흥 바빌론을 일으켜 앗수르를 멸망시켰으며(B.C 609년경), 유다를 바빌론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래서 유다는 50년 후 돌아올 수 있었으며, 국가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이토록 두려운 나라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사야는 신탁을 전하였다. 앗수르의 운명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1. 알 티라(두려워하지 말아라).
10:24-27절에 나타난 예언자의 구원 신탁은 앗수르의 운명과 관계 지어졌다. 예언자는 앗수르 제국의 멸망을 내다보았다. ‘남은 자’가 돌아오듯이 예루살렘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여기서 앗수르의 운명을 논하는 4개의 짧은 문장이 나오고 있다.
첫째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는 모두 망할 것이다(10:20-23). 둘째는 예루살렘은 결코 앗수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10:24-27). 셋째는 야하웨 쯔바오트(군대를 거느리시는 야하웨)께서 가지를 꺾어 그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이 중 가장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네 번째이다. 예루살렘은 앗수르의 침략을 면할 수 있다는 예언자의 확신이다. 이사야는 다윗의 도성 예루살렘에 무한한 애착(愛着)을 가지고 있었으며 희망을 걸고 있었다. 다윗 왕국의 터전인 시온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사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사야 생전에는 예루살렘은 보호받았다. 이사야 사후 백 수십 년이 지난 다음 예루살렘은 바빌론 왕 느브가드네사르에게 멸망되었다(B.C. 587/6년경).
이사야가 활발히 예언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앗수르의 국력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으며, 약소국들은 계속 침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본문은 앗수르의 쇠퇴를 논하고 있어, 요시야 시대의 예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B.C. 640-609년경). 요시야 통치 시대에 앗수르는 그 힘을 잃기 시작했으며,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신흥 바빌론이 발흥하고 있을 때이다. 성급한 예언자 나훔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베의 멸망까지 내다보는 예언을 하였다. 이때 예루살렘은 완전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그래서 새 국가건설에 신뢰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루살렘은 고양(高揚)되고 있었다.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