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에게 내린 경고 (사 8:11-15)-1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4년 06월 20일(목) 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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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나를 붙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의 길을 따라 걷지 말라고 나에게 이르셨으니-”(私譯, 사8:11).
“많은 사람이 그것들에게 부딪히며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고 부서지며 또 덫에 걸려서 사로잡히게 되리라.” (私譯, 사8:15).
강한 손으로 붙들어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임마누엘)와 함께 계신 데도 이 백성(유다)과 예루살렘 주민(아하즈 왕을 포함해서)은 여전히 이사야의 예언을 거부하고 불신앙에 빠져 있었다. 참으로 목이 곧은 백성이요, 배역하는 백성이다. 그런 이유로 본 단락에서는 위협적인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래서 히브리어 특유의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여 그 강도를 깊게 한다. 원문은 간결한데도 그 의미는 깊기만 하다. 예언자의 넉넉함을 여기서 볼 수 있다.
그 시대 이사야만이 주권자이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소명 받은 자로 자기의 책무를 다하였다. 위기에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원할 자는 강대국 앗수르가 아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유다는 내 백성인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유다는 정치적 곡예나 모험을 중지해야 한다. 하나님을 제쳐놓고 체결한 에프라임(이스라엘)과 다메섹(시리아)의 군사동맹은 패망을 자초할 뿐이다. 임마누엘 앞에서 나라들과 백성들의 동맹은 무위(無爲)에 끝날 것이다.
본 단락에 나타난 예언의 유형은 위협과 동시에 경고성이 들어있다. 예언자는 하나님 이외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다. 이사야 예언의 역사적 배경은 역시 에프라임과 시리아의 군사동맹과 전쟁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예언은 경고가 들어 있다. 본 예언의 주류는 이스라엘의 두 집과 예루살렘의 주민이다. 모두 통일국가 다윗 왕국에서 파생된 나라들이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아하즈 왕국이 그렇다.
1. 이 백성의 길(베데레크 하암 하제)
예언자의 관심과 고백은 “이 백성”에게 머물러 있다. 내용은 경고의 예언이요, 위협의 말이다. 다메섹(시리아)과 이스라엘(에프라임) 사이에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다윗 왕국을 치기 위하여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다 백성과 아하즈 왕가는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두려워 떨었으며 전전긍긍하였다.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사야 7:2절에 잘 묘사되었다.
“아람(다메섹)이 에프라임과 동맹했다는 소식이 다윗 집(아하즈 왕가)에 알려지자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바람 앞에서 나무의 숲이 흔들리듯 떨었다.”
바로 이것이 “이 백성”의 길이었다. “길”이란 “데레크”인데 행위요 방책이다. 예언자는 백성의 길을 따라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함께 독자 노선을 걸어가야 한다. 예언자 이사야에게 정치적 안목과 올바른 통찰력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선포한 예언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사야도 육체적 긴장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영적으로도 긴장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에 야훼의 말씀이 들려왔다. 그리고 행위로 그에게 접근해 오셨다. “강한 손으로 나를 붙잡으시고”, 직역하면 “그분의 강한 손으로 나를 빼앗으시고”이다. 이사야는 야훼 하나님이 육박해 오셔서 강한 손으로 붙잡아주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이 백성) 빼내셨음도 느꼈다.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옛날 야훼의 강하고 힘센 손으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히브리 민족을 빼내셨다. 그리고 강하고 억센 손으로 다윗 왕국을 도와주셨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강한 손으로 예언자를 붙들어 주신다. 그 시대에는 이사야가 있어야 했다. 야훼 하나님이 “나에게”(1인칭 이사야 자신) 직접 말씀하시고 나를 붙잡아 주신다. 예언자가 몸 전체로 체험하는 신앙고백이다. 이사야의 신앙은 “아멘”신앙이다. 11절에 나오는 “이 백성”이 12절에서는 동사가 복수형으로 나온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생생한 계시로 그의 전 존재가 영적 경험을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많은 사람이 그것들에게 부딪히며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고 부서지며 또 덫에 걸려서 사로잡히게 되리라.” (私譯, 사8:15).
강한 손으로 붙들어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임마누엘)와 함께 계신 데도 이 백성(유다)과 예루살렘 주민(아하즈 왕을 포함해서)은 여전히 이사야의 예언을 거부하고 불신앙에 빠져 있었다. 참으로 목이 곧은 백성이요, 배역하는 백성이다. 그런 이유로 본 단락에서는 위협적인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래서 히브리어 특유의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여 그 강도를 깊게 한다. 원문은 간결한데도 그 의미는 깊기만 하다. 예언자의 넉넉함을 여기서 볼 수 있다.
그 시대 이사야만이 주권자이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소명 받은 자로 자기의 책무를 다하였다. 위기에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원할 자는 강대국 앗수르가 아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유다는 내 백성인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유다는 정치적 곡예나 모험을 중지해야 한다. 하나님을 제쳐놓고 체결한 에프라임(이스라엘)과 다메섹(시리아)의 군사동맹은 패망을 자초할 뿐이다. 임마누엘 앞에서 나라들과 백성들의 동맹은 무위(無爲)에 끝날 것이다.
본 단락에 나타난 예언의 유형은 위협과 동시에 경고성이 들어있다. 예언자는 하나님 이외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다. 이사야 예언의 역사적 배경은 역시 에프라임과 시리아의 군사동맹과 전쟁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예언은 경고가 들어 있다. 본 예언의 주류는 이스라엘의 두 집과 예루살렘의 주민이다. 모두 통일국가 다윗 왕국에서 파생된 나라들이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아하즈 왕국이 그렇다.
1. 이 백성의 길(베데레크 하암 하제)
예언자의 관심과 고백은 “이 백성”에게 머물러 있다. 내용은 경고의 예언이요, 위협의 말이다. 다메섹(시리아)과 이스라엘(에프라임) 사이에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다윗 왕국을 치기 위하여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다 백성과 아하즈 왕가는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두려워 떨었으며 전전긍긍하였다.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사야 7:2절에 잘 묘사되었다.
“아람(다메섹)이 에프라임과 동맹했다는 소식이 다윗 집(아하즈 왕가)에 알려지자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바람 앞에서 나무의 숲이 흔들리듯 떨었다.”
바로 이것이 “이 백성”의 길이었다. “길”이란 “데레크”인데 행위요 방책이다. 예언자는 백성의 길을 따라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함께 독자 노선을 걸어가야 한다. 예언자 이사야에게 정치적 안목과 올바른 통찰력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선포한 예언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사야도 육체적 긴장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영적으로도 긴장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에 야훼의 말씀이 들려왔다. 그리고 행위로 그에게 접근해 오셨다. “강한 손으로 나를 붙잡으시고”, 직역하면 “그분의 강한 손으로 나를 빼앗으시고”이다. 이사야는 야훼 하나님이 육박해 오셔서 강한 손으로 붙잡아주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이 백성) 빼내셨음도 느꼈다.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옛날 야훼의 강하고 힘센 손으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히브리 민족을 빼내셨다. 그리고 강하고 억센 손으로 다윗 왕국을 도와주셨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강한 손으로 예언자를 붙들어 주신다. 그 시대에는 이사야가 있어야 했다. 야훼 하나님이 “나에게”(1인칭 이사야 자신) 직접 말씀하시고 나를 붙잡아 주신다. 예언자가 몸 전체로 체험하는 신앙고백이다. 이사야의 신앙은 “아멘”신앙이다. 11절에 나오는 “이 백성”이 12절에서는 동사가 복수형으로 나온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생생한 계시로 그의 전 존재가 영적 경험을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