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아르야슈브의 표징-5 (사 7:1-9)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4년 05월 02일(목) 1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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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믿음(요8:29-32)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일까? 예수님에 관하여 믿는 것일까, 예수님 자신을 신뢰하는 것일까? 믿음은 어떤 사실에 있지 않고, 인격에 있다.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사건)을 믿는다면 그것은 이미 믿음이 아니다(고전1:22, 마12:38-40, 16:1-4).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요8:29-30).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요8:31).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들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있을 곳이 없었다(요8:37, 5:38). 그들 역시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 자들이었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했다(요5:39). 39절의 ”연구하다.“(엘류나오)란 뜻은 ”개가 먹이를 찾아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연구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5:38-40에 이르는 문맥을 보면, “말씀, 성경, 영생, 그리스도”가 핵심어들인데, 사도 요한은 “성경과 말씀”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기록했다. 그들은 성경이 성령을 통해 증언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며(롬10:17), 그리스도 자신이다(요1:1,14).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요5:39). K. Barth는 “우리가 설교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에 대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인가? 그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가? 그것이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가?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로부터 기인되지 않는 믿음은 헛것이다(고전2:1-5). 유대인들은 성경 연구에 실패했다. 그래서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지 않았다(요5:40).
따라서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라고 하셨다(요8:31). 본문의 “거하다.”(메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체적 일체와 같은 것으로(요14:10), 그리스도와 우리의 인격적, 영적 온전한 연합을 뜻한다(요15:1-9). 예수님을 믿었다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사건 곧 “예수님에 관하여” 믿었던 것이지. 예수님과 온전한 “인격적 연합”의 믿음은 아니었다. 요9장에 등장하는 나면서 소경된 자의 증언이 이와 비슷한 과정을 갖는다. 처음에 그는 예수님보다는 자신의 눈이 띄어진 것에 관해 증언했다(요9:25). 그후 예수님께서 자신을 메시아로 증어하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 영적으로 온전히 연합한 믿음을 가진다(요9:37,38).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기독교는 어떤 사건이나 기적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으키는 분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이다.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다. 문자적, 물리적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여 친밀하게 교제하며 신뢰하는 것이다. 이럴 때 진리(예수님)가 우리를 죄(요8:21,24,34)와 죽음(요5:24, 8:51), 사탄으로부터(요8:44) 자유를 주신다(요8:36). 견고하고 확신에 찬 믿음은 우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 곧 그리스도로부터 온다(엡2:8-9, 고전2:1-5).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믿음(요8:29-32)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일까? 예수님에 관하여 믿는 것일까, 예수님 자신을 신뢰하는 것일까? 믿음은 어떤 사실에 있지 않고, 인격에 있다.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사건)을 믿는다면 그것은 이미 믿음이 아니다(고전1:22, 마12:38-40, 16:1-4).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요8:29-30).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요8:31).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들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있을 곳이 없었다(요8:37, 5:38). 그들 역시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 자들이었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했다(요5:39). 39절의 ”연구하다.“(엘류나오)란 뜻은 ”개가 먹이를 찾아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연구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5:38-40에 이르는 문맥을 보면, “말씀, 성경, 영생, 그리스도”가 핵심어들인데, 사도 요한은 “성경과 말씀”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기록했다. 그들은 성경이 성령을 통해 증언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며(롬10:17), 그리스도 자신이다(요1:1,14).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요5:39). K. Barth는 “우리가 설교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에 대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인가? 그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가? 그것이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가?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로부터 기인되지 않는 믿음은 헛것이다(고전2:1-5). 유대인들은 성경 연구에 실패했다. 그래서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지 않았다(요5:40).
따라서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라고 하셨다(요8:31). 본문의 “거하다.”(메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체적 일체와 같은 것으로(요14:10), 그리스도와 우리의 인격적, 영적 온전한 연합을 뜻한다(요15:1-9). 예수님을 믿었다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사건 곧 “예수님에 관하여” 믿었던 것이지. 예수님과 온전한 “인격적 연합”의 믿음은 아니었다. 요9장에 등장하는 나면서 소경된 자의 증언이 이와 비슷한 과정을 갖는다. 처음에 그는 예수님보다는 자신의 눈이 띄어진 것에 관해 증언했다(요9:25). 그후 예수님께서 자신을 메시아로 증어하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 영적으로 온전히 연합한 믿음을 가진다(요9:37,38).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기독교는 어떤 사건이나 기적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으키는 분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이다.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다. 문자적, 물리적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여 친밀하게 교제하며 신뢰하는 것이다. 이럴 때 진리(예수님)가 우리를 죄(요8:21,24,34)와 죽음(요5:24, 8:51), 사탄으로부터(요8:44) 자유를 주신다(요8:36). 견고하고 확신에 찬 믿음은 우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 곧 그리스도로부터 온다(엡2:8-9, 고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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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