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아르야슈브의 표징-3 (사 7:1-9)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4년 03월 21일(목) 1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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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서
예루살렘의 보존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지, 물의 확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 상징적 뜻이 담긴 이름의 아들을 데리고 갔다(10:21-22). “스아르-야슈브”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이다. 예언자 호세아의 아들처럼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이다(호1장).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살아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확고부동(確固不動)하시다. 이 아이의 이름대로 완전한 멸망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예언자가 선포한 신탁을 왕이 신뢰하고 예루살렘이 따른다면, 유다는 구원받을 수 있다. 심판이 있는 후 구원의 때가 열린다. 그래서 “스아르-야슈브”이다. 이사야의 남은 자의 사상이다. 이사야 신탁의 일대 전환이다. 왕가가 그의 메시지를 거부하자, 소수의 경건한 무리 “남은 자”에게 희망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사야는 왕에게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7:4-5).
삼가 지키고 안심하라. 겁내지 마라. 당신의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굳은 신념으로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서 있으면 된다. 아람 왕 르찐이나 이스라엘 왕 페카흐는 “부지깽이”이기 때문이다.
부지깽이는 “우드”이다. 복수형을 사용하였다. “이 두 왕국은 부지깽이들이다.” 타나 남은 쓸모없는 부지깽이다. 그렇다고 완전한 소멸은 아니다. 이 두 나라의 멸망은 기정사실이다. 멸망의 증인으로 일부를 남겨두는 것 뿐이다. 그들이 유다를 공격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부지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해 그들의 침공은 저지당하고 실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왕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아야 한다.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고 원조를 청해서도 안 된다. 앗수르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은 토끼굴에 사자를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형제국 싸움에 강적을 끌어들인 결과가 되었다. 결국 시리아 다메섹은 부지깽이 모양으로 멸망했다.
동맹국은 아하즈를 갈아치우고 친 시리아 계통의 왕으로 교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타브엘의 아들”을 유다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다. 아하즈와 동시대의 사람인데 아람어 발음으로 보아 아람인으로 보인다. 다윗 계통으로 이어지는 유다 왕국을 아람인의 손에 넘겨주려고 하였다. 아하즈 통치 때 유다는 이처럼 위태로웠다. 동맹국들은 다윗 왕국을 멸망시키려고 공격을 가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침략자를 물리치셨다. 이사야가 그들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여기서 이사야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지 않고, 에프라임이라고 부른 것은 국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며, 유다 왕국과 비교하여 동렬에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북왕국 이스라엘 역시 타다 남은 부지깽이로 끝났다. 그들은 무모하게도 군사적인 우월성만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세계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앗수르 왕 티클라트빌레셀을 사용하였다. 앗수르 제국 역시 하나님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만이 이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다. 사마리아에 있는 임금 페카흐는 무모한 짓을 도모하던 중 실패했으며, 그의 부하 호세아에게 죽임을 당했다. 호세아는 앗수르의 지원을 받아 반역을 일으켰으며, 페카흐를 처치하고 이스라엘 마지막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 역시 단명으로 끝난다. 앗수르에게 멸망하였기 때문이다(B.C 722년).
▶다음호에 계속
예루살렘의 보존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지, 물의 확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 상징적 뜻이 담긴 이름의 아들을 데리고 갔다(10:21-22). “스아르-야슈브”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이다. 예언자 호세아의 아들처럼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이다(호1장).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살아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확고부동(確固不動)하시다. 이 아이의 이름대로 완전한 멸망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예언자가 선포한 신탁을 왕이 신뢰하고 예루살렘이 따른다면, 유다는 구원받을 수 있다. 심판이 있는 후 구원의 때가 열린다. 그래서 “스아르-야슈브”이다. 이사야의 남은 자의 사상이다. 이사야 신탁의 일대 전환이다. 왕가가 그의 메시지를 거부하자, 소수의 경건한 무리 “남은 자”에게 희망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사야는 왕에게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7:4-5).
삼가 지키고 안심하라. 겁내지 마라. 당신의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굳은 신념으로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서 있으면 된다. 아람 왕 르찐이나 이스라엘 왕 페카흐는 “부지깽이”이기 때문이다.
부지깽이는 “우드”이다. 복수형을 사용하였다. “이 두 왕국은 부지깽이들이다.” 타나 남은 쓸모없는 부지깽이다. 그렇다고 완전한 소멸은 아니다. 이 두 나라의 멸망은 기정사실이다. 멸망의 증인으로 일부를 남겨두는 것 뿐이다. 그들이 유다를 공격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부지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해 그들의 침공은 저지당하고 실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왕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아야 한다.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고 원조를 청해서도 안 된다. 앗수르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은 토끼굴에 사자를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형제국 싸움에 강적을 끌어들인 결과가 되었다. 결국 시리아 다메섹은 부지깽이 모양으로 멸망했다.
동맹국은 아하즈를 갈아치우고 친 시리아 계통의 왕으로 교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타브엘의 아들”을 유다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다. 아하즈와 동시대의 사람인데 아람어 발음으로 보아 아람인으로 보인다. 다윗 계통으로 이어지는 유다 왕국을 아람인의 손에 넘겨주려고 하였다. 아하즈 통치 때 유다는 이처럼 위태로웠다. 동맹국들은 다윗 왕국을 멸망시키려고 공격을 가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침략자를 물리치셨다. 이사야가 그들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여기서 이사야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지 않고, 에프라임이라고 부른 것은 국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며, 유다 왕국과 비교하여 동렬에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북왕국 이스라엘 역시 타다 남은 부지깽이로 끝났다. 그들은 무모하게도 군사적인 우월성만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세계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앗수르 왕 티클라트빌레셀을 사용하였다. 앗수르 제국 역시 하나님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만이 이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다. 사마리아에 있는 임금 페카흐는 무모한 짓을 도모하던 중 실패했으며, 그의 부하 호세아에게 죽임을 당했다. 호세아는 앗수르의 지원을 받아 반역을 일으켰으며, 페카흐를 처치하고 이스라엘 마지막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 역시 단명으로 끝난다. 앗수르에게 멸망하였기 때문이다(B.C 722년).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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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