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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아르야슈브의 표징-2 (사 7:1-9)
미션21 phj2930@nate.com
2024년 03월 07일(목) 16:42
정형수 목사
아시아교회 담임 Mission Bible college & Seminary 대학원장
▶지난호에 이어서
이스라엘은 유다 남쪽 해안지대에 위치한 블레셋을 충동하여 유다 남쪽을 치게 하였다.
그리고 동맹군이 유다를 향해서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때가 B.C. 735-734년경이다. 유다는 사면초가에 직면했으며, 왕 아하즈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는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무능한 왕이었으며 불신앙의 왕이었다. 아하즈는 유다가 위기에 처하자 몰렉 신에게 바치려고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 자”이다(왕하 16:3).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금한 율법을 범했으며, 이방 신을 섬겼다. 이스라엘 왕 페카흐와 시리아(아람)왕 르찐이 연합하여, 앗수르를 대항하기 위하여 주변에 있는 군소국가들과 연합전선을 폈다. 강제로 유다도 가입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먼저 유다를 침공한 것이다. 소위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아하즈는 위기에 몰리자 제정신을 잃었다. 예언자 이사야가 있어 충고하고 신탁을 전했는데도 거절하였다. 아하즈는 이사야의 간곡한 만류가 있었는데도, 거절하고 자진해서 앗수르의 봉신국이 되었다. 무모한 정책을 편 시리아는 앗수르왕 티클라빌레셀에게 멸망했으며 다메섹은 함락당했다(B.C. 733년경). 그 후 시리아는 재흥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방 일부가 앗수르의 영토로 병합되었다. 페카흐는 실각당했으며 앗수르의 꼭두각시 왕 호세아가 마지막 왕이 되었다. 그도 역시 완전 독립을 위하여 반앗수르 정책을 폈으나 앗수르에게 멸망했다. 애굽의 지원을 약속받은 듯하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으며, B.C. 722년 사마리아가 함락당하고 북왕국은 멸망하였다.
유다 왕 아하즈는 막대한 조공을 바치고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다. 이때부터 예루살렘에는 앗수르의 문물(이방종교 문화)이 들어왔으며, 각양의 앗수르의 우상들이 들어왔다. 이토록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에 이사야는 신탁을 전했는데, 그 내용이 본문이다. 아하즈는 다윗 가문 출신이다. 웃지야의 손자요 요탐의 아들이다. 처음에는 섭정으로 통치했으나 웃지야가 죽자 왕이 되었다. 그는 무능했으며 불신앙의 왕이었다. 그의 곁에 예언자 이사야가 있었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으며 앗수르의 우상을 섬김으로 다윗 왕국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유다에서는 “세습으로 물려받은 왕은 지도자가 아니다.”라고 유다 랍비는 말한다. 지배자이지 지도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2. 스아르-야슈브의 표징(오트)
그때 야훼께서 이사야에게 아하즈를 만나라고 말씀하셨다. 야훼의 지시는 이사야가 왕을 만나 신앙적 결단을 내리도록 조처하기 위해서이다.
“너는 너의 아들 스아르-야슈브를 데리고 세탁업자의 들로 가는 길 쪽에 있는 높은 웅덩이 도랑 끝으로 아하즈를 만나기 위해 나가거라.”(私譯, 7:3).
상징적인 이름이 담긴 아들을 데리고 가라는 명령과 아하즈를 만날 장소까지 지시해 주었다. 예루살렘으로 물을 끌어오는 수원지, 그 우물가를 아하즈가 시찰하고 있었다. 정확한 장소는 어딘지 미지수이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다. 예루살렘은 높은 대지(垈地)에 있어 전쟁 때 물의 확보는 전략상 매우 중요하다. 포위당할 때를 대비하기 위한 물의 준비이다. 아하즈는 이것 때문에 시찰을 나간 듯하다. 안보상 물의 비축량도 중요하지만, 물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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