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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아르야슈브의 표징-1 (사 7:1-9)
미션21 phj2930@nate.com
2024년 02월 15일(목) 14:04
정형수 목사
아시아교회 담임 Mission Bible college & Seminary 대학원장
“주 야하웨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람의 수도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우두머리는 르찐이다(육십오 년 이내에 에프라임은 망하고 백성은 산산이 깨어지리라) 에프라임의 수도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우두머리는 말리야의 아들이다. 너희가 확고히 믿지 않는다면 결코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私譯, 사 7:7-9).

신앙의 때를 알라.
7:1-6절까지는 역사적인 기록이며, 7:7-9절은 이사야의 신탁인데 통칭 이사야의 “비망록”의 핵심 부분에 속한다. 유다왕 아하즈시대(B.C. 744-716년 섭정 후 왕위에 올랐다)의 예언이다. 본 비망록은 역사적인 실제 사건으로 시리아와 에프라임(이스라엘의 애칭) 전쟁 기간 동안 예언자 이사야가 목격한 기록인데 예언자적 시각에서 본 역사해석이며 정치적 상황묘사이다.
1. 정치적 상황
7-8장에 나타난 시리아 에프라임 전쟁을 잘못 이해하면 시리아와 에프라임 간의 전쟁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엄밀히 설명하면 시리아(아람)와 북왕국 이스라엘과의 군사 동맹이며, 남왕국 유다를 치기 위한 전쟁이다. 역사적인 긴박한 상황은 이사야서 6-8장에 기록되어 있다. 예언자가 내다본 격변의 국제정세와 유다의 위기 상황이다. 예언자의 시각에서 본 역사의식이다. 그래서 1인칭으로 나오는 곳이 많기 때문에 이사야의 비망록(備忘錄)이라고 한다. 이사야는 간결한 문체로 위기 상황을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하였다. 그 시대 사람들도 시리아, 에프라임의 무모한 동맹을 잘 알고 있었다. 예언자는 나타난 유다의 위기보다도 그 배후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있었다.
시리아(아람)와 이스라엘(에프라임)이 군사 동맹을 체결했으며, 형제국 유다를 응징하려고 하였다. 시리아 다메섹 왕은 르찐인데, 반앗수르의 강경파였다. 르찐은 대략 B.C. 740-732년경까지 아람(시리아)을 통치하였다. 팔레스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 앗수르의 서진 정책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이때 앗수르는 티클라트빌레셀 3세가 통치하고 있었다(B.C. 745-727년경). 티클라트빌레셀은 약화된 앗수르를 일약 군사 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전략에 능한 군사전문가였다. 그의 정복 야욕은 시리아와 팔레스틴 땅을 노리고 있었다. 북왕국 이스라엘 왕은 페카흐인데(B.C. 735-732년경) 시리아의 르찐과 같이 대앗수르 강경파였다.
그는 앗수르의 사주를 받은 호세아에 의해 실각당하고 살해되었다. 왕권은 호세아에게 넘어갔으며 결국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은 멸망하였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호세아이다(B.C. 732-722년경). 예언자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을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제 마음대로 왕이 되었다.”고 비난했다. 이는 멸망 전 북왕국의 혼란상을 말한다. 시리아 왕 르찐은 반앗수르 정책에 동반자로서 이스라엘을 끌어들였다. 반앗수르 정책에 유다가 동조하지 않자, 아하즈 왕을 갈아치우기 위해서 시리아-에프라임이 군사 동맹을 맺은 것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형제국 유다를 치기 위해서 시리아와 동맹을 맺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큰 잘못을 범하였다. 그는 앗수르의 침략을 촉진시켰다. 이스라엘의 왕 르말리아의 아들 페카흐(베카)는 시리아 정책의 추종자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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