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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소명-2 (사 6:1-8)
미션21 phj2930@nate.com
2024년 01월 04일(목) 17:06
정형수 목사
아시아교회 담임 Mission Bible college & Seminary 대학원장
▶지난호에 이어서
그는 팔레스틴 전역을 노리고 있었다. 이처럼 유다가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을 때 이사야가 소명을 받았다. 그의 소명은 유다의 위기와 맞물려 예언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해 주었다. 이사야의 속죄 체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였다.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의 성전을 “야훼의 집”(바이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서는 원문이 “헤칼”이다. “웅장한 궁전”을 의미한다. “헤칼”은 외래어이다. “대궐, 신궁(神宮)”인데 특히 왕궁을 의미한다. 이처럼 “성전” 뜰이 아니고 성전 안 지성소 앞에 있는 내실에서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예언자는 “주님”(아도나이)을 보았다. 주님은 스라핌들의 날개로 얼굴을 가리우고 훨훨 타는 불꽃처럼 보였다. 그리고 “카도쉬(거룩하다), 카도쉬, 카도쉬” “야훼 쩨바오트의 영광이 모든 땅에 충만하리라.”라는 음성을 들었다. 이사야는 자기 눈으로 직접 하나님의 영광(카보드)이 임하는 것을 보았으며 음성도 들었다. 이사야도 야훼의 거룩성 앞에 압도당했으며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그런 다음 불결한 자아를 발견하고 실존적 고백을 한다. 이사야는 여기서 신비의 체험을 한다. 연기로 에워싼 어둠을 향해 자신의 신앙을 큰소리로 고백한다. 그는 “오이 리” “아 내게 화가 미쳤구나.”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참으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거룩성(카도쉬)을 목격한 즉시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느꼈다. 그는 자신의 불결함을 고백하였다.
유다적 전통에서 볼 때 하나님을 뵙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출 32:20). 그래서 그는 “야훼 쩨바오트”(만군의 야하웨)를 “왕”(멜레크)으로 고백하였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났으며, 신앙을 고백하였다. “자기 입술이 부정하며 입술이 부정한 백성(암) 가운데 있다.”고 고백하였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한 이사야는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였다. 이사야가 “부정한”이라고 고백한 히브리어는 “타메”이다. 불법이나 악이 아니다. 종교적, 도덕적 불결(거룩하신 분 앞에서)을 의미한다. “타메”는 종교적 용어이다. “불결”의 반대가 “정결”(타헤르)이다. “정결”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거룩성 앞에 설 수가 있다. “정결” 역시 종교적인 용어이다. 히브리종교에서 정결은 구원과 직결된다.
예언자 가운데 이사야만이 자신의 “타메”(불결)를 고백하였다. 그는 불결한 백성 중에 함께 있다고 고백했다. 히브리적 사유로 개인의 죄와 불결은 공동체의 불결과 죄가 된다. 그래서 “우리”라고 나온다. 개인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함께 있는 공동체 “우리”가 된다. 이사야가 입술이 부정하다고 고백한 것은 백성을 대표해서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고백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언제든지 피해자처럼 등장한다.”고 헤세르는 말하였다. 이사야는 “타메” 즉 종교적이며 제의적인 데서 죄가 무엇인지를 파악한 최초의 예언자가 되었다. 이사야는 인간의 죄를 불결과 교만에서 찾았다. 그토록 강력하고 능력 있는 왕 웃지야가 교만으로 불결한 문둥병에 걸려 죽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적 범죄로 비참한 일생을 보냈다. 그래서 이사야를 깨끗하고 겸손한 예언자라고 한다.
이사야의 소명
이사야의 소명은 “바에스모아”로 시작된다. “그래서 내가 들었습니다.”이다. 속죄를 경험한 후 “아도나이”(나의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면서 소명을 받는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나”는 1인칭으로 야훼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를 위하여”(라누)로 나온다. 복수형 “우리”를 사용했다. 문법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 “엘로힘”(하나님)도 복수형이다(창 :22, 11:6).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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