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의 소명-1 (사 6:1-8)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3년 12월 21일(목) 1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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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말하였다. ‘아! 나에게 재앙이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야하웨 쯔바오트를 내 두 눈으로 뵙게 되었다.”(私譯, 사 6:5).
“그때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 것인가? 그때 내가 말하였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십시오!”(私譯, 사 6:8)
우리와 나
이사야 6장부터 9장 6절까지는 이사야의 비망록에 속한다. 그중 6장은 예언자 이사야의 소명 체험이 들어있으며 역사적인 한 임금의 죽음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6장은 예언자 자신을 1인칭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언자 자신의 종교적인 속죄 체험을 실감 있게 소개하고 있다. 다른 예언서에는 볼 수 없는 내용이 기술되고 있어 거룩한 예언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예언자 가운데서 이사야만이 자신의 불결함을 고백하면서 시작된다. 구약 예언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기의 실존을 말씀으로 가리우고 있다. 그런데 이사야만이 자신의 진상을 드러내고 종교적 고백까지 한다. 이사야는 자신의 불결함을 고백함으로 거룩한 예언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사야는 또한 예루살렘의 예언자 다윗 가문의 예언자라고 부른다. 열성적으로 다윗 가문을 옹호하였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무한한 애착(愛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사랑한 예언자이다. 그는 명문가 출신으로 예루살렘 왕궁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었다. 예언자는 “환상”(히존)을 본다. 그런데 이사야는 환상 속에서 하나님의 현현(세키나, 顯現)을 체험했다. 그의 불결의 고백은 하나님 체험에서 시작된다. 바로 그때가 “유다 왕 웃지야가 죽던 해”이다. “죽은 다음”이 아니다.
웃지야의 통치업적에 대해서는 열왕기하 15:1-13절과 역대기하 26장에 기록되었다. 한 거물급 왕이 죽자 동시에 가장 위대한 예언자가 소명을 받는다. 소명 받았을 때가 정확히 웃지야의 사망 전인지, 사망 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웃지야는 장기 집권했으며 유다를 일약 최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역량 있는 정치 지도자였다. 30만이라는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농촌진흥과 개발에도 큰 공적을 남겼다. 블레셋을 식민지화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부패가 극심했으며 빈부격차가 심화(深化)되어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정의와 공평이 사라졌으며 재판은 뇌물로 좌우되었다. 막중한 군사비 지출로 백성은 과중한 부담에 시달렸으며 관리들의 횡포는 그 도를 넘어섰다.
웃지야는 스스로 교만하여 세속왕조의 왕권을 행사하려고 하였다. 결국 그는 치명타를 입었다. 이방 나라의 왕처럼 종교까지 간섭하려고 하였다. 야훼의 제단에 향을 피우다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격리되어 생활하던 중 죽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요탐이 섭정을 했으며, 후계자 아하즈가 섭정으로 통치하던 중 웃지야가 죽으므로 왕이 되었다. 이사야는 아하즈 시대와 그의 후계자 히즈키야 시대에 집중적으로 예언활동을 하였다.
이사야의 속죄 경험
이사야가 소명을 받을 당시 유다는 혼미 속에 빠져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인권탄압과 부패가 극심했으며 종교적으로는 혼합종교가 야하웨 종교의 신봉자를 압도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정세도 유동적이었으며 유다는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앗수르 왕 티클라트빌레셀이 등극하자(B.C. 745-727년경) 시리아와 팔레스틴 정복을 위해 군대를 강화시켰다. 티클라트빌레셀은 군사전문가였으며 정복욕에 불타는 야심가였다.
▶다음호에 계속
“그때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 것인가? 그때 내가 말하였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십시오!”(私譯, 사 6:8)
우리와 나
이사야 6장부터 9장 6절까지는 이사야의 비망록에 속한다. 그중 6장은 예언자 이사야의 소명 체험이 들어있으며 역사적인 한 임금의 죽음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6장은 예언자 자신을 1인칭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언자 자신의 종교적인 속죄 체험을 실감 있게 소개하고 있다. 다른 예언서에는 볼 수 없는 내용이 기술되고 있어 거룩한 예언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예언자 가운데서 이사야만이 자신의 불결함을 고백하면서 시작된다. 구약 예언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기의 실존을 말씀으로 가리우고 있다. 그런데 이사야만이 자신의 진상을 드러내고 종교적 고백까지 한다. 이사야는 자신의 불결함을 고백함으로 거룩한 예언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사야는 또한 예루살렘의 예언자 다윗 가문의 예언자라고 부른다. 열성적으로 다윗 가문을 옹호하였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무한한 애착(愛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사랑한 예언자이다. 그는 명문가 출신으로 예루살렘 왕궁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었다. 예언자는 “환상”(히존)을 본다. 그런데 이사야는 환상 속에서 하나님의 현현(세키나, 顯現)을 체험했다. 그의 불결의 고백은 하나님 체험에서 시작된다. 바로 그때가 “유다 왕 웃지야가 죽던 해”이다. “죽은 다음”이 아니다.
웃지야의 통치업적에 대해서는 열왕기하 15:1-13절과 역대기하 26장에 기록되었다. 한 거물급 왕이 죽자 동시에 가장 위대한 예언자가 소명을 받는다. 소명 받았을 때가 정확히 웃지야의 사망 전인지, 사망 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웃지야는 장기 집권했으며 유다를 일약 최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역량 있는 정치 지도자였다. 30만이라는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농촌진흥과 개발에도 큰 공적을 남겼다. 블레셋을 식민지화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부패가 극심했으며 빈부격차가 심화(深化)되어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정의와 공평이 사라졌으며 재판은 뇌물로 좌우되었다. 막중한 군사비 지출로 백성은 과중한 부담에 시달렸으며 관리들의 횡포는 그 도를 넘어섰다.
웃지야는 스스로 교만하여 세속왕조의 왕권을 행사하려고 하였다. 결국 그는 치명타를 입었다. 이방 나라의 왕처럼 종교까지 간섭하려고 하였다. 야훼의 제단에 향을 피우다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격리되어 생활하던 중 죽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요탐이 섭정을 했으며, 후계자 아하즈가 섭정으로 통치하던 중 웃지야가 죽으므로 왕이 되었다. 이사야는 아하즈 시대와 그의 후계자 히즈키야 시대에 집중적으로 예언활동을 하였다.
이사야의 속죄 경험
이사야가 소명을 받을 당시 유다는 혼미 속에 빠져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인권탄압과 부패가 극심했으며 종교적으로는 혼합종교가 야하웨 종교의 신봉자를 압도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정세도 유동적이었으며 유다는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앗수르 왕 티클라트빌레셀이 등극하자(B.C. 745-727년경) 시리아와 팔레스틴 정복을 위해 군대를 강화시켰다. 티클라트빌레셀은 군사전문가였으며 정복욕에 불타는 야심가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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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