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법정에 들어서시다-② (사 3:12-15)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3년 11월 23일(목) 1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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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서
동사는 “나샤”(kal, 분사복수형)이다. “나쉼”과 “노쉼”의 차이다. 히브리어 자음은 동일하다. 모음만 다르다. “고리대금업자, 이익을 탐하는 자”이다. 냉혈 인간이며 동족애나 동정 따위를 버린 자들이다. 이들은 종교 공동체가 아니다. 이런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내 백성을 다스린다. 진정한 지도자란 내 백성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축복에 이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유다는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가. 어린아이 같은 자들, 경륜 없는 여자 같은 자들이 토색하는 데만 일삼고 있다. 고리대금업자 같은 무례한들이 예루살렘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예언자 이사야가 본 당시 예루살렘의 정황이다.
“다스리다.”는 “마샬”이다. 말씀으로 다스려야 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로 다스려야 한다. 이런 지도자들이 상좌에 앉아 내 백성의 가는 길, 정의의 길을 걷게 하였다. 이것 때문에 결국 재앙이 그들을 삼킬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것이다.
2. 포도원을 불태우는 자들
지배자들을 재판하기 위해 법정을 개설하시고 소송을 제기하신다. “내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처벌하기 위해서이다. 예언자의 신탁은 14절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집권자들의 허물과 탐욕을 심판하시려고 하나님이 나타나시고(닛짜브) 바로 그 현장에 서 계신다(오메드). 인격화된 신의 표현양식이다. 13절의 백성들(암밈)이 70인 역은 “그의 백성”(임모)이다. 곧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판단(재판)하시기 위해서 일어서셨다. 이제 행위가 따를 것이다. 당시의 지배자들은 명백한 범법자들이다. 재판을 통해서 정죄 받는다. 유다의 지도자들(종교 지도자들도 포함) 백성의 대표자들, 정치가, 군사 전문가, 권력가들은 그의 백성의 포도원에서 일하라고 임명받은 자들이다. 야훼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법정으로 소환하셨다. 그리고 다투기 위해서 소송을 제기하신다. 여기서 “다투다.”(리브)는 “변론을 제기하다.”의 뜻이다. 이들에게도 변론의 기회를 주신다. 본문에 나오는 역사적 시대상황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아하즈 왕의 통치는 정화되지 못하고 계속 악한 길을 따라 걸었다. 예언자가 있어 계속 충고했으나 예언자의 신탁을 거부하였다. 여기서 권력의 정상인 왕이 나오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주로 장로와 정치가들이다. 지도자들과 고위층들을 재판에 회부(回附)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인 규례들과 율법의 파괴에 대해서 그 죄를 준엄하게 문책한다. 이들을 재판에 회부한 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사3:14절 하반절이 그 내용이다.
이들의 죄는 하나님의 동산인 포도원(이스라엘)을 불태웠으며 가난한 자들의 재물을 불법으로 늑탈한 죄이다(5:1-7).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으며 불법으로 남의 재물을 탈취하여 부(富)를 축적하였다. 마치 어리석고 우둔하기가 욕심꾸러기 소년 같으며 유다 상류층의 부녀자들처럼 무한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 예루살렘 상류층의 사치와 방종은 유명하였다(3:16-26). 이처럼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이스라엘의 공동체)을 자신의 소유물인 양 늑탈했다. 파렴치하고 더러운 행동을 계속하였다. 구원사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포도원이다. 지도자로 위임받은 자들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생명의 풍요와 복지증진을 위해서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도 손에 힘이 있다고 가난한 자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정치적으로 억압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이요, 종교 공동체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송이이다. 다른 과실과 달리 포도송이는 크고 작은 것이 함께 붙어 있어 조화를 이룬다.
▶다음호에 계속
동사는 “나샤”(kal, 분사복수형)이다. “나쉼”과 “노쉼”의 차이다. 히브리어 자음은 동일하다. 모음만 다르다. “고리대금업자, 이익을 탐하는 자”이다. 냉혈 인간이며 동족애나 동정 따위를 버린 자들이다. 이들은 종교 공동체가 아니다. 이런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내 백성을 다스린다. 진정한 지도자란 내 백성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축복에 이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유다는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가. 어린아이 같은 자들, 경륜 없는 여자 같은 자들이 토색하는 데만 일삼고 있다. 고리대금업자 같은 무례한들이 예루살렘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예언자 이사야가 본 당시 예루살렘의 정황이다.
“다스리다.”는 “마샬”이다. 말씀으로 다스려야 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로 다스려야 한다. 이런 지도자들이 상좌에 앉아 내 백성의 가는 길, 정의의 길을 걷게 하였다. 이것 때문에 결국 재앙이 그들을 삼킬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것이다.
2. 포도원을 불태우는 자들
지배자들을 재판하기 위해 법정을 개설하시고 소송을 제기하신다. “내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처벌하기 위해서이다. 예언자의 신탁은 14절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집권자들의 허물과 탐욕을 심판하시려고 하나님이 나타나시고(닛짜브) 바로 그 현장에 서 계신다(오메드). 인격화된 신의 표현양식이다. 13절의 백성들(암밈)이 70인 역은 “그의 백성”(임모)이다. 곧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판단(재판)하시기 위해서 일어서셨다. 이제 행위가 따를 것이다. 당시의 지배자들은 명백한 범법자들이다. 재판을 통해서 정죄 받는다. 유다의 지도자들(종교 지도자들도 포함) 백성의 대표자들, 정치가, 군사 전문가, 권력가들은 그의 백성의 포도원에서 일하라고 임명받은 자들이다. 야훼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법정으로 소환하셨다. 그리고 다투기 위해서 소송을 제기하신다. 여기서 “다투다.”(리브)는 “변론을 제기하다.”의 뜻이다. 이들에게도 변론의 기회를 주신다. 본문에 나오는 역사적 시대상황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아하즈 왕의 통치는 정화되지 못하고 계속 악한 길을 따라 걸었다. 예언자가 있어 계속 충고했으나 예언자의 신탁을 거부하였다. 여기서 권력의 정상인 왕이 나오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주로 장로와 정치가들이다. 지도자들과 고위층들을 재판에 회부(回附)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인 규례들과 율법의 파괴에 대해서 그 죄를 준엄하게 문책한다. 이들을 재판에 회부한 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사3:14절 하반절이 그 내용이다.
이들의 죄는 하나님의 동산인 포도원(이스라엘)을 불태웠으며 가난한 자들의 재물을 불법으로 늑탈한 죄이다(5:1-7).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으며 불법으로 남의 재물을 탈취하여 부(富)를 축적하였다. 마치 어리석고 우둔하기가 욕심꾸러기 소년 같으며 유다 상류층의 부녀자들처럼 무한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 예루살렘 상류층의 사치와 방종은 유명하였다(3:16-26). 이처럼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이스라엘의 공동체)을 자신의 소유물인 양 늑탈했다. 파렴치하고 더러운 행동을 계속하였다. 구원사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포도원이다. 지도자로 위임받은 자들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생명의 풍요와 복지증진을 위해서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도 손에 힘이 있다고 가난한 자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정치적으로 억압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이요, 종교 공동체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송이이다. 다른 과실과 달리 포도송이는 크고 작은 것이 함께 붙어 있어 조화를 이룬다.
▶다음호에 계속
미션21 phj2930@nate.com

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