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아타-2 네가 누구냐?(창27:18) 미션21 phj2930@nate.com |
| 2023년 10월 12일(목) 1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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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서
하나님께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목사인데 목사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장로인데 장로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확신에 넘친 대답을 할 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야곱은 에서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교활한 야곱이다. 그는 분명히 야곱이고 그의 본성이 야곱이니 그는 틀림없이 야곱이다. 대답만으로 에서가 될 수는 없다. 에서의 본성과 에서가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고로 그는 아버지와 하나님(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을 속였으나 여전히 야곱이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 앞에 가까이 나아갈 때 성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하콜 콜 야곱) 이 손들(복수형에 주의해야 한다)은 에서의 손들이다(하야딤 야데이 에서)” 그렇다! 야곱이 변장하여 손으로는 아버지 이삭을 감쪽 같이 속일 수 있었으나 음성(콜)은 속일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히브리어 「콜」은 “음성 또는 소리”로 번역되나 더 깊은 뜻이 있다. “콜(음성)”이란 마치 지문(指紋)과 같이 자기 내면성의 표현이요, 유일성이며 자기 특유의 음성이며 어조이다. 그리고 자기 인품의 발로이며 현현(顯現)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만이 지닌 실존의 바탕의 표현이다. “콜 에하드”로는 누가 감히 속일 수도 없으며 실존 본바탕에서 나오는 자기 특유의 음성이다. 그래서 소리는 숨길 수도 없으며 속일 수도 없다. 우리는 손을 보아서는 누구의 손인지 구별할 수 없으나 음성은 그렇지 않다. 소리는 들으면 대체로 그게 누구의 음성인지 알아낼 수 있다. 소리는 속이지 못한다. 소리는 인간 전 존재의 바탕에서 나오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주신 유일성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은 그렇지 않다. 손은 그 사람의 능력을 상징한다.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출 4:4),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출 17:11). 손(야드)은 히브리어로 다양한 의미가 있다. “효력”, “세력”, “힘”, “활력”, “정력”, “능력”, “수완”, “재산”, “증대”, “자기 기념”, “자기 영역 확장” 등으로 이 세상에서 필요한 권세·부귀·영화·명예 등을 말한다. 음성(콜)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며 손(야드)은 인간만이 알고 좋아하며 따르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은 거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의 인간됨이나 신앙에 근거한 도덕적 수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손의 술수에 매혹당한다. 권세·힘·부귀·세력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게로 몰려든다. 그의 본성이 악할지라도 일단은 그리로 모여들어 갖은 추태와 아부를 다 한다. 교활하기 그지없는 것이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보고 그를 따른다. 그러나 바른 삶을 위해서 성실한 삶을 위해서는 손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바른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바른 사고와 바른 판단으로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음성을 듣고 그 정체(正體)를 파악할 수 있는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 변장한 야곱이 손으로는 아버지를 속였으나, 음성으로는 속이지를 못했다. 이것은 세상의 권세와 부와 힘을 가지고는 인간을 속일 수는 있으나 본바탕인 음성은 속일 수 없듯이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다음호에 계속
하나님께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목사인데 목사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장로인데 장로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확신에 넘친 대답을 할 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야곱은 에서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교활한 야곱이다. 그는 분명히 야곱이고 그의 본성이 야곱이니 그는 틀림없이 야곱이다. 대답만으로 에서가 될 수는 없다. 에서의 본성과 에서가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고로 그는 아버지와 하나님(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을 속였으나 여전히 야곱이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 앞에 가까이 나아갈 때 성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하콜 콜 야곱) 이 손들(복수형에 주의해야 한다)은 에서의 손들이다(하야딤 야데이 에서)” 그렇다! 야곱이 변장하여 손으로는 아버지 이삭을 감쪽 같이 속일 수 있었으나 음성(콜)은 속일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히브리어 「콜」은 “음성 또는 소리”로 번역되나 더 깊은 뜻이 있다. “콜(음성)”이란 마치 지문(指紋)과 같이 자기 내면성의 표현이요, 유일성이며 자기 특유의 음성이며 어조이다. 그리고 자기 인품의 발로이며 현현(顯現)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만이 지닌 실존의 바탕의 표현이다. “콜 에하드”로는 누가 감히 속일 수도 없으며 실존 본바탕에서 나오는 자기 특유의 음성이다. 그래서 소리는 숨길 수도 없으며 속일 수도 없다. 우리는 손을 보아서는 누구의 손인지 구별할 수 없으나 음성은 그렇지 않다. 소리는 들으면 대체로 그게 누구의 음성인지 알아낼 수 있다. 소리는 속이지 못한다. 소리는 인간 전 존재의 바탕에서 나오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주신 유일성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은 그렇지 않다. 손은 그 사람의 능력을 상징한다.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출 4:4),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출 17:11). 손(야드)은 히브리어로 다양한 의미가 있다. “효력”, “세력”, “힘”, “활력”, “정력”, “능력”, “수완”, “재산”, “증대”, “자기 기념”, “자기 영역 확장” 등으로 이 세상에서 필요한 권세·부귀·영화·명예 등을 말한다. 음성(콜)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며 손(야드)은 인간만이 알고 좋아하며 따르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은 거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의 인간됨이나 신앙에 근거한 도덕적 수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손의 술수에 매혹당한다. 권세·힘·부귀·세력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게로 몰려든다. 그의 본성이 악할지라도 일단은 그리로 모여들어 갖은 추태와 아부를 다 한다. 교활하기 그지없는 것이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보고 그를 따른다. 그러나 바른 삶을 위해서 성실한 삶을 위해서는 손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바른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바른 사고와 바른 판단으로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음성을 듣고 그 정체(正體)를 파악할 수 있는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 변장한 야곱이 손으로는 아버지를 속였으나, 음성으로는 속이지를 못했다. 이것은 세상의 권세와 부와 힘을 가지고는 인간을 속일 수는 있으나 본바탕인 음성은 속일 수 없듯이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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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2(목) 1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