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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아타-1

네가 누구냐?(창27:18)

미션21 phj2930@nate.com
2023년 09월 20일(수) 11:20
정형수 목사
아시아교회 담임 Mission Bible college & Seminary 대학원장
“네가 누구냐?”(미 아타)라는 이 물음은 아버지 이삭이 그의 아들 야곱에게 던진 질문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묻는 물음이기도 하다.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기 위해서 어머니 리브가와 모사(謀事)를 꾸민 후 나이 많아 눈이 어두운 늙은 아버지를 기만(欺瞞)하기 위해서 에서로 가장(假裝), 아버지 앞에 나아간 야곱에게 아버지 이삭이 던진 질문이다. 그는 천륜(天倫)을 거역하고 아버지와 하나님을 속였다. 이 드라마의 연출은 어머니 리브가에 의해서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고대 중동 사회의 풍습과 구약성경에 의하면 장자에게 가통(家統)을 잇는 상속권이 있었다. 야곱은 이것을 노린 것이다. 대체로 아버지는 장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제2의 자기로 생각한다. 장자를 통해서 또 하나의 자기를 의식하게 되고 장자에게 기대를 걸면서 늙어 간다. 노년의 의미를 장자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귀염성 있는 막내아들을 사랑한다. 일종의 편애이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는 구변 좋고 요령이 좋으며 약삭빠른 야곱을 사랑, 드디어 두 사람이 가장을 속이는 데까지 나아간다.
“네가 누구냐?”라는 이 말은 에서로 변장한 야곱의 가슴을 치는 물음이다. 그러나 야곱은 태연자약(泰然自若)했다. “나는 맏아들 에서로 소이다.”라고 대답했다. 과연 야곱은 에서인가! 인간은 유일성의 존재요 책임적 존재이다. 에서라고 할 때는 에서의 성품, 에서의 본질, 에서의 유일성, 에서의 일을 해야 한다. 그는 대답만 에서라고 했지 여전히 야곱이다. 에서가 둘이 될 수 없다. 에서는 하나면 족하다. 그 누구도 에서의 흉내를 낼 수가 없다. 설혹 감쪽같이 에서로 가장했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에서는 아니다. 에서가 야곱이 될 수 없듯이 야곱도 에서가 될 수 없다.
히브리어로 에서(에사오)는 “털투성이”, “거친”, “우직스런”, “야성적인”이란 뜻이 있다. 에서는 우직스럽기는 하나 누구를 속인 일은 없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지 않다. 히브리어로 야곱(야아콥)은 결코 좋은 이름이 아니다. 히브리어 동사로 야곱을 표현하면 “속이다, 속여 빼앗다, 협잡(부정)을 하다, 사기를 치다.”의 뜻이 있고 형용사로 표현하면 “변덕스러운”, “엉큼한”, “완고한”, “끈질긴”, “다루기 힘든”, “교활한”, “간사한”, “못된”이란 뜻으로 아주 좋지 못한 이름이다. 명사로 표현하면 “발뒤꿈치”, “발자국” 등으로 이름이 지닌 의미 중 가장 나쁜 이름의 소유자이다. 그의 행위가 그 이름을 증명이나 하듯이 교활한 이름이고 경계해야 할 이름이다. 에서와 유사점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야곱이 에서로 가장(假將)하고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 이삭은 “네가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네가 누구냐?(미 아타)”의 히브리어 뜻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는 성품을 말한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는 숨어 있는 정체, 즉 존재의 의미와 본질을 묻는다. “너는 거기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는 평소 하는 일을 묻는다.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있는 중이냐?” 도상에 있는 인간에게 가고 있는 방향을 묻고 있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의미는 “너는 무엇이냐?”로 사명을 묻고 있다. 이와 같이 “네가 누구냐”라는 물음 속에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으나 종합해보면 이 물음 안에는 인간존재의 의미, 사상, 행동, 사명을 묻는 질문이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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