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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철이 할머니-1
미션21 phj2930@nate.com
2023년 09월 07일(목) 13:48
박주정 교장
광주광역시 진남중학교 교장
2003년 3월 광주시교육청 생활지도 담당 장학사가 되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었고, 나는 무척 기뻤다. 그런데 생활지도 업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 성폭력, 자살, 학교안전사고, 체벌 그리고 각종 민원 등 맡은 업무 어느 한 가지도 책상에서 처리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장학업무에 비해 유독 어려운 일이 많았기에 모든 장학사들이 기피하는 부서이기도 하다. 아침 7시 30분쯤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하는 날이 허다했다. 토요일, 일요일도 출근하는 일이 많았다.
초보 장학사 시절, 교육청에 들어온 수많은 민원 가운데 한 가지 일이 마음에 남아 있다.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한 학부모가 글을 올렸다. 학교에 대한 비난과 담임선생님에 대한 험담이 가득한 내용이었다. 거의 매일 올렸다. 하루라도 빠지면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글을 올렸다. 상철이 학생의 할머니였다. 상철이는 일찍이 부모가 이혼하여 할머니가 키우고 있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상철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상철이 담임선생님이 교육청으로 전화를 했다. 상철이 할머니 때문에 교직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을 설득했다.
“좋은 학생만 지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어렵고 힘든 학생들을 우리가 안고 가는 것 또한 우리 역할 아닙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상철이 3학년 때는 담당 장학사로서 학교를 찾아갔다. 학교에 가니 교장, 교감 선생님이 하소연을 했다.
“상철이 할머니 때문에 학생들 생활지도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반에서 친구들 간에 말다툼하는 이야기까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고, 학교를 비난하고, 담임선생님을 험담하니 그 글을 읽어본 학부모들은 속도 모르고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교장선생님에게 위로를 겸해서 말했다.
“제가 상철이 할머니를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상철이 학생 주소를 좀 주십시오.”
상철이가 사는 집을 찾아갔다. 골목에 있는 4층 건물 옥탑방이었다. 상철이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는데, 강직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시교육청에서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장학사입니다.”
“생활지도 장학사가 뭐하는 사람이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생활지도 관련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그랬더니 학교 욕을 하고, 담임선생님을 험담하고, 교육청에 일하는 놈들이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비싼 세금 가지고 봉급 받고 일하는 놈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등 거친 말들이 한 시간 동안이나 쏟아졌다.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었다. 거의 이야기가 끝난 것 같았다.
“할머니 가십시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시게요.”
할머니, 상철이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집 근처 식당으로 갔다. 밥을 대접하면서 식당 주인에게 내 명함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 할머니와 아이가 여기 오셔서 밥을 드실 때는 밥값을 받지 마세요. 제가 와서 계산하겠습니다.”
할머니는 자기에게 밥값을 내라는 줄 알고는 나보고 밥값을 내라고 했다.
“아닙니다, 할머니. 아무 때나 오셔서 식사하세요. 밥값은 제가 지불할게요. 대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나 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은 올리지 마세요. 못마땅한 일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제게 전화를 하세요.”
명함을 할머니께도 드렸다. 할머니는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 교장, 교감, 담임 선생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앞으로 그 할머니를 무조건 친절하게 대해주면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리고 뒷일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이 “박 장학사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 상철이 할머니는 학교에서 일어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거의 매일 전화로 나에게 알려왔다. 빈도가 병적이었다. 상철이를 반 학생들이 무시한다, 선생님이 무성의하다. 나는 끝까지 들어주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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