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 2023.09.20(수) 11:34
아프리카 말라위 소년에게
미션21 phj2930@nate.com
2023년 08월 24일(목) 15:38
박주정
광주광역시 진남중학교 교장
학생들의 봉사활동이 잘 운영되자 욕심이 생겼다. 국내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견문도 넓히면서 학생들을 세계인으로 키우고 싶었다. 방학 기간을 통해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집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학부모지도봉사단에서도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 무렵 ‘월드비전’에서 가난한 나라에 ‘우물파기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나는 월드비전을 찾아갔다. 학생들과 학부모봉사단 일부가 월드비전에 합류하여 첫 방문 나라가 정해졌다. 아프리카 잠비아와 탄자니아 사이에 있는 국가 ‘말라위’였다. 말라위를 방문하기 전에 현지 학생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는 볼펜, 연필, 사인펜, 지우개 등 최고급 학용품을 준비했다. 많이 나눠주기 위해 대량으로 구입했다.
말라위에 도착했다. 허허벌판에 초목이 어지럽게 우거져 있었다. 흙먼지를 날리면서 공을 차고 있던 학생들이 신기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어느 중학교에 도착했다. 교장선생님께 “한국에서 왔다”고 통역을 했다. 학생들에게 줄 학용품을 전달했다. 그런데 준비해서 가져간 학용품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책도 없고, 노트도 없었다. 오직 축구공만이 최고의 선물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우리가 가져간 학용품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일행은 며칠을 보내면서 우물을 팠다. 또 봉사단에서 가져간 의약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주민들의 웃는 모습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천진난만했다.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했다.
주민들의 주거지는 움막에 가까웠다. 바람이 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TV에서 늘 봐왔던 아프리카의 모습 그대로였다. 물 구하기가 어려웠다. 몇 ㎞를 걸어서 양재기에 담아 머리에 이고 왔다. 이렇게 떠온 물도 거의 흙탕물이었다. 연민이 느껴지는 가난한 나라였다.
나는 그때 월드비전에 매월 3만 원씩 우물파기운동 후원금을 보내고 있었다. 문득,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곳 학생을 한국에 데려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고 우리나라의 선진화된 농업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선진농업을 배워서 이 허허벌판에 곡물과 각종 채소를 심고, 농토를 개간하여 농업국으로 발돋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전율처럼 일었다. 통역을 통해 말라위 교장선생님께 내 뜻을 전했다. 부지런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 한 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여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으로 오면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보내주겠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이 환한 얼굴로 한 학생을 데리고 왔다. 전교 1등 학생이라고 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가 훤칠한 소년이었다.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 학생이 곁에 와서 내 손을 잡았다. 처음 본 이국땅의 학생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꼭 친자식 같은 기분이었다.
말라위는 중학교 학제가 4년제였다. 당시 그 학생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2년 후에는 꼭 한국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 학생을 데리고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착하고 순진한 아이였다. 내가 떠나는 날, 손을 흔들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도 처음 본 그 학생이 자꾸 떠오르고 전생에 어디에선가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말라위에서 아들 한 명을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한국에 데리고 와서 농업계 고등학교를 보내야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이번에도 당신 뜻이 그렇다면 찬성이라고 했다. 나는 2년 동안 편지와 선물을 보내면서 기다렸다. 어찌된 일인지 2년이 다 돼가던 해에는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고, 소식도 알 수 없었다. 월드비전에 소년의 근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월드비전으로부터 ‘얼마 전에 병으로 죽은 것으로 확인된다’는 연락이 왔다.
한국에 데리고 와서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대학교도 보내서 훌륭한 청년으로 키우고 싶었는데…. 여기까지가 이생의 인연이었을까. 소년과 내가 함께 꾼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가끔 그 소년의 해맑은 웃음이 떠오른다. 하룻밤 짧은 인연이었지만 애절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미션21 phj2930@nate.com
독자 의견 (0개)
이 름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