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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0(수) 11:34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미션21 phj2930@nate.com
2023년 08월 11일(금) 11:34
박창수 목사
·기독교학 박사 ·희년사회 목회신학위원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기독교경제학&사회윤리전공
평지수훈에서 예수님은 부요한 자에게 화를 선언하신다(눅 6:24-26). 이 본문에 등장하는 ‘너희 부요한 자’, ‘너희 지금 배부른 자’, ‘너희 지금 웃는 자’,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너희’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시고”(눅 6:20)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바로 제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네 가지 표현들은 제자들 가운데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다른 표현들이다. 그럼 이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지금” 배부르며 웃는 자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부요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눅 6:24)에서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부요한 자가 위로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위로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본문을 연상케 한다. 그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 16:25)라고 말하는데, 그 말의 뜻은 부자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 곧 위로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죽은 후에 더 이상 위로를 받을 수 없고 괴로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라는 말씀 역시, 부요한 자는 더 이상 위로를 받을 수 없고 그 대신 괴로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화”인 것이다.
그럼 이 ‘부요한 자’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와 대조되는 ‘가난한 자’의 실체가 ‘땅 없는 자’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부요한 자’는 바로 ‘땅을 많이 가진 자’이다. 대지주인 것이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눅 12:16)에서 부자가 소유한 ‘밭’에 사용된 헬라어 ‘코라’는 산이나 강을 경계로 삼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을 가리킨다. 부자는 바로 대지주인 것이다. 이런 ‘부요한 자’의 가문은 오랜 세월 동안 희년 토지법을 어기고 가난한 자에게 땅을 돌려주지 않음으로써 대지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법 앞에서 그들은 한마디로 불법을 자행하여 대지주가 된 것이다.
이어서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 6:25)라는 말씀은 대지주인 부요한 자가 그 막대한 불로소득으로 지금은 배부르고 웃지만 장차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그 넓은 땅을 잃음으로써 주리고 애통하며 울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 그 넓은 땅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바로 땅 없이 가난하여 주리고 우는 자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희년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말씀은 희년 혁명의 노래인 마리아의 찬가 중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눅 1:52-53)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지주로서 부요하여 지금 배부르고 웃는 자는 또한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자이다(눅 6:26). 그런데 그들은 박해를 받기는커녕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받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요한 자는 화가 있다. 왜냐하면 희년의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가난한 자에게 주신 몫을 강탈하여 이 세상에서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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