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 2022.07.22(금) 12:12
예언은 말과 몸으로! (2)

--이사야의 고뇌(사 20:2-3)--

미션21 phj2930@nate.com
2022년 04월 26일(화) 12:06
정형수 목사
아시아교회 담임 Mission Bible college & Seminary 대학원장
지난주에서 계속
예루살렘 민중들에게 이사야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그의 “영웅숭배론”에서 천재는 광기(狂氣)가 있다고 하였다. 루터나 바울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만일 루터나 바울, 예언자 이사야(에스겔에게도 그런 징후가 농후했다)에게 광기가 있다면 광기가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보다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자였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일반 군중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의 행동화였다.
이사야는 광기의 예언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운동선수가 운동하기 위해서 노출할 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갈머리 없는 사람들은 의복으로 인간을 평가한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옷만 바라본다. 또 한 종류의 사람은 옷과 동시에 옷거리인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감탄하고 칭찬한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옷이나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속마음과 진실한 모습을 본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척도로 인간을 보아야 한다. 독재자들과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은 색다른 옷을 ?纛만? 옷에 붙은 장식품을 통해 자기 권위를 드러낸다. 히틀러나 뭇소리니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인도의 간디를 보라. 그는 겉모양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체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 이상 숨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주저 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과오나 잘못도 없이 수치와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는 3년간 포로처럼 되어 몸의 일부분만 가리고 맨발로 걸어 다녔다. 대예언자가 예루살렘 거리를 노출한 몸으로 걸어 다녔다. 이는 상징적인 예언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예언자는 자신의 몸을 던진다.”고 말하였다. 그렇다. 진실한 예언자는 입술의 말이 아니라 전 인격, 전 생명을 던진다. 오늘 우리의 기독교는 말의 풍년, 말의 기교와 향연 속에서 살고 있다. 진실이 들어있는 행동을 본 일이 거의 없다. 이사야는 말로 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으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건을 담아 나르는 도구로 살았다. 그는 알몸으로 묵시적(?示的) 사건의 “징조”(徵兆, 오트)를 보이고, “표징”(모페트)을 통해서 이상한 일을 경고했다. 알몸이 된 이사야는 그 자신이 징조이며 표징이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그 시대상을 드러내셨다. 마침내 예언자 이사야가 보여준 그대로 두 나라는 포로 신세가 되어 젊은이로부터 늙은이까지 알몸과 맨발로 잡혀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요1:1). 그는 가르침과 행위에 전혀 모순이 없으셨다. 우리는 많이 가르치고 배워도 행함이 없다. 그것을 야고보서 기자는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우리가 전하고 들은 설교들을 그대로 행하였다면 이 땅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윤리성의 빈곤 때문에 일부 현대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초월성을 배제시킨 윤리성”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르치고 행하기도 하였지만, 행하고 가르쳤어도 전혀 ?兆坪?없으셨다(행1:1). 그는 바로 말씀의 인격화이셨다. 이사야가 알몸과 맨발로 전했던 말씀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역시 “말씀의 인격화”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미션21 phj2930@nate.com
독자 의견 (0개)
이 름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