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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3(금) 11:42
“잘 가르치고 모범된 삶으로 제자들 가슴 속에 감동 심어 ”

■ 교직 40년 동안 제자들에게 ‘공립 미션스쿨’실천 홍인표 원로 장로(서남교회)

미션21 phj2930@nate.com
2021년 08월 31일(화) 15:46
홍인표 원로 장로(서남교회)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는 시대.
‘적자생존’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해 온 지난 수십 년의 학교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은 오로지 좋은 대학 진학과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했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친구들을 딛고 위로 올라서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공교육의 실패’라는 말이 어제 오늘 회자된 말은 아니지만, 4차산업혁명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에 와서야 학벌보다 창의력, 책상머리 공부보다 현장에서 필요한 능력, 그리고 인성과 품성이 능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을 잘 가르치고 모범된 삶으로 제자들 가슴속에 감동을 심어준 홍인표 선생님이야 말로 우리 시대의 사표요, 참 스승이라 할 수 있다.

크리스천·교사·국가공무원 세 가지 정체성 굳건히 지켜
“말씀의 터 위에 세상 학문과 지식 심어야 행복한 삶 된다”
2년 전, 졸업 40년 된 50대 제자들 40여명 행복한 사은회
40년간 함께 교회 섬겨온 조성현 장로 “홍 장로님은 내 삶의 멘토”

그런 의미에서 홍인표 선생님은 40여 년 전인 1969년 초임교사(장흥 관산북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교육현장에 부임했다.
깊은 신앙심으로 무장된 그는 자신의 40여년의 교단생활에 세 가지 정체성을 갖고 임했노라고 회상한다.
첫 번째는 크리스천이요, 두 번째는 교사요, 세 번째는 국가공무원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아내 또한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평생 부부교사로 살아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터에 세상의 학문과 지식을 심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신념과 ‘공립미션스쿨’ 운영자의 철학으로 아이들을 교육했다.
교사초임시절부터 정년퇴임 때까지 그는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했다. 정규근무시간을 침해하지 않고 기도회와 큐티를 제자들과 나누기 위해서였다. 제자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30분 먼저 나와 선생님과 함께 기도와 큐티를 했다. 공동체를 위해, 동료 교사를 위해, 부모와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홍인표 선생님은 기도와 함께 정기적으로 교실에서 아이들 발 씻겨주기, 어려운 가정 돌아보기, 학용품 사주기 등을 결코 표 나지 않게 꾸준히 오랫동안 실천했다. 또 그 시절 아버지가 학교에 오는 가정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학예회를 밤에 따로 두 시간 가량 준비해 아버지가 꼭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12월에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극화해서 아이들이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홍인표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던 학생들이 당시에 “우리 30년 후에 어른이 되어서 선생님을 모시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단다. 홍 선생님은 아이들의 치기어린 약속이겠거니 했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2019년 어느 가을날 그 때 그 제자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백양사호텔 별관으로 찾아간 홍인표 선생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50대 중반이 되어 머리가 희끗희끗 해진 제자들 40여명이 홍 선생님을 반기며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눈시울을 붉히며 선생님을 외치던 그때의 그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홍 선생님의 제자 중에는 7전8기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제자도 있고 의사도 있고 교수도 있지만, 그에게 있어 가슴 깊은 곳에 남는 두 제자가 있다고 한다.
한 제자는 40년 전 6학년 담임 을 맏았던 기주라는 제자였다.
그가 몇 년 전, 30여년 만에 전화를 했는데 말투가 잘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어눌해서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선…생…님…저, 기…기…기준데요….”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쳤지만, 담담하게 응대했다. “그래, 우리 기주…정말 오랜만이구나.”
“네…선생…님.”
그렇게 30여년 만에 만난 그 제자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반신불수의 몸으로 누워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가 들릴락말락한 말투로 자주 되뇌이는 말이 있어 아내가 그 말을 듣고 선생님을 찾은 것이었다. 그 말은 “홍인표 선생님께 기도 한 번만 받으면 나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렇게 그의 집으로 찾아간 홍 선생님은 그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치료의 하나님! 우리 기주를 일어나게 해주세요….”
간절한 기도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주가 누웠던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선생님을 붙잡았다. 스승과 제자는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또 한사람의 잊을 수 없는 제자는 김성일 선교사였다.
몇 해 전, 어느 날 국제전화가 걸려와 받아보니 제자 김성일이 귀국길에 걸어 온 전화였다.
“은사님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스승의 날에 맞춰 잠시 귀국하게 되어 은사님 내외분을 모시고 15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식당 예약을 부탁드립니다.”
김성일 선교사는 홍 선생의 첫 부임지인 관산북초등학교에서 5~6학년 2년을 가르쳤던 제자였다. 그 제자는 숱한 고난과 죽을 고비와 굴곡의 시간을 거쳐 지금은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세계 4분의 1에 해당하는 권역에 파송된 모든 선교사를 돌보는 대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처음 신앙의 씨앗을 심었던 홍 선생님으로서는 하나님 앞에 감격과 감사의 기도외에 드릴 것이 없었다.
그날 그 식당에서 그 제자는 만장한 손님들께 양해의 말씀을 구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손님 여러분, 죄송합니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스승의 날을 맞아 47년 만에 은사님께 노래 한 곡을 선물하려고 합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식당 안은 조용해지면서 스승보다 더 머리가 하얗게 센 예순의 제자와 스승을 번갈아 바라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울먹이며 이어지던 그의 노래가 복받쳐오르는 감정으로 끊기고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 손님 중 중년 여성 한분이 무대 위로 올라가 제자의 마이크를 함께 잡고 노래를 이어갔다. 순간 식당 주인의 재치로 가사 자막이 대형화면에 띄어지자 식당 안 손님 모두가 일어나 함께 스승의 노래를 목청 높여 불렀다.
이 밖에도 낙도 오지에 교회를 세워 국민일보에 보도된 내용 등 지면이 제약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소개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홍인표 장로는 또 한사람의 제자 아닌 제자를 멘토와 멘티로 소개한다.
바로 40년간 같은 교회를 함께 섬겨 온 후배 조성현 장로다.
홍 장로에 따르면, 그를 40년 넘게 지켜봐 온 신앙의 선배로서 참으로 신실하고 신뢰할만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소개한다.
조성현 장로는 기독병원에서 은퇴하면서 퇴직금 중 5천만원을 “어려운 환우 치료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기부했고 지역 신학대학교에도 1억원의 후원금을 쾌척했다. 뿐만아니라 섬기는 서남교회에서 30년 동안 1년에 1개 교회를 건축하거나 리모델링 하는데 늘 빠짐없이 수백만원씩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조 장로는 어린이전도협회 이사장으로 섬기며 수년간 많은 재정을 돕고 있다. 전남노회 교회학교아동부연합회장과 전국 부회장을 역임하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을 후원하며 기도했다.
홍인표 장로는 “조성현 장로의 청년시절, 처음 교회에 등록할 때 교회학교 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한 이래 지금까지 조 장로는 하나님의 일이라면 거절이 없고 토를 다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청년시절에 “신앙의 훈련을 받고싶다”는 조 장로를, 홍 장로는 어린이전도협회 5일클럽에 등록시켰고 교사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해 성령님의 체험을 한 후, 어린이전도협회에서 20년간 이사로, 또 8년간 이사장으로 헌신하며 최근 어린이전도협회 회관 구입에도 큰 역할을 했다.
조성현 장로는 “홍인표 장로님은 제 삶과 신앙의 멘토이시다”며 늘 이끌어주심에 감사하며 존경하는 선배님으로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겸손해 했다.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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