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산업(주)이 만든 승용차 ‘프라이드’.
빨간색을 휘날리며 50만㎞를 함께한 ‘광주 1도 6076’.
10년 동안 707명을 등하교시켰다.
급식실의 잔반을 수거해 닭, 오리 먹이를 실어 날랐다.
늦은 밤 오락실, 당구장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국민차의 신화라 말했고, 나에게는 통학차, 운반차, 순찰차로 동행한 전설이었다.
가난한 아내가 선물해 준 첫 자가용이었다.
1992년 3월,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해 연말, 학생들에게 실망해서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운명처럼 다음 해 다시 교직에 들어섰고, 8명의 학생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이런 희한한 동거가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었다. 우리 가족 3명과 학생 8명에게 10평 아파트는 콩나물시루였다. 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내쫓을 수는 없었다. 결단을 내렸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전세금을 보태서 넓지만 저렴한 곳을 찾아 이사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10㎞ 정도 떨어진 외곽지역이었다. 광주시와 담양군의 경계인 용전에 4천여 평의 땅과 40평 규모의 창고를 임대하여 학습공동체라 이름했다.
이때 한 식구가 된 것이 빨간 프라이드다. 차가 없으면 학생들의 등하교가 불가능했다. 아침에 깨워서 밥 먹이고, 도시락 준비해서 프라이드로 두 번을 왕복했다. 한번은 하도 힘들어서 한꺼번에 태웠다. 좌석에 6명, 뒷트렁크에 2명을 실었다. 한마디로 차가 찢어지게 태웠는데 트렁크에 탄 아이들이 퉁퉁 튀니까 아프다고 악을 썼다. 그후부터는 4명을 먼저 태워 등교시키고, 다시 용전 집으로 돌아와 나머지 4명과 함께 출근했다.
빨간 프라이드는 색깔 때문에 확 띄었다. 다른 학생들이 아침마다 이 프라이드를 기다렸다. 호기심과 조금은 부러워하는 눈치로 어젯밤 학습공동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강으로 들판으로, 수영하고 토끼 잡으러 다닌 일이 일상생활인데 친구들에게 조금 뻥 튀겨 이야기해 주니 엄청 재미있어했다. 여러 학생들이 학습공동체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
등교 때 가장 힘든 것은 두 번 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깨우는 일이었다. 밤늦게까지 떠들고 놀다가, 공부하다가 자니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다. 도시락 반찬은 아주 간단했다. 내가 요리 솜씨가 없어서 김치, 단무지, 콩나물이 끝이었다. 나중에는 어묵, 계란 등 반찬을 아이들이 잘 만들어서 한결 쉬웠다.
빨간 프라이드의 하교는 밤 10시쯤이다. 내가 맡은 반은 정규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운동을 하거나 공부하게 하고, 그 시간을 이용해서 나는 대학원을 다녔다. 대학원 수업이 끝나면 다시 학교에 오겠다고 했으나 처음에는 도망을 가기도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억지로 붙잡아 둘 수도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았다. 빨간 프라이드에 빵, 우유, 김밥을 몽땅 실었다. 남아 있는 학생들을 푸짐하게 먹였다. 이렇게 날마다 반복했더니 내 진심을 알아주고는 끼리끼리 어울려 책 읽고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대부분 10시까지 남았다. 텅텅 빈 학교에 우리 학급만 남아 있으니 자부심도 커갔다. 차에는 항상 먹거리가 가득해서 빨간 프라이드만 나타나면 에워싸고 난리가 났다.
“선생님, 오늘은 뭣 사 왔어요?”
“이야, 이거이거 정말 내가 먹고 싶었는데….”
“우리는 날마다 신이 나붑니다.”
당시 실업계 학생들이 밤 10시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음식을 나눠주고, 대화하다가 종례는 밤 10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세상에, 우리 새끼들, 이 시간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다니, 처음 있는 일이네. 이게 뭔 일이다냐?”
자녀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으니 학부모들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서로 격려하면서 양돈을 하는 분은 돼지를 잡아주고, 김밥집 학부모는 참기름이 번지르르한 김밥을 바리바리 싸 오셨다. 많이들 포기하고 기대를 버렸던 아이들인데 인문계 학생들보다 더 늦게 하교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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