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미션21 phj2930@nate.com |
2025년 02월 25일(화) 1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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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끌려가실 때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 여자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셨다(눅 23:28).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눅 23:31)에서 “푸른 나무”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죽은 나무”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말씀은 로마군이 살아 있는 푸른 나무와 같은 예수님에게도 십자가 처형을 하는데 죽어 있는 마른 나무와 같은 예루살렘은 더욱더 심하게 파괴하지 않겠으며 그 사람들은 더욱더 참혹하게 죽이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장차 일어날 예루살렘의 파괴와 그 성민의 학살을 예고하신 것이다(눅 23:29-30). 그래서 예수님은 슬피 울며 뒤따르는 여자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파괴는 예수님이 이미 예고하셨다(눅 19:41-44; 21:12-24).
예수님은 그 날을 “징벌의 날”이라고 표현하셨다(눅 21:22). 무슨 죄에 대한 징벌의 날인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죄이다(눅 21:12-19). 따라서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날은 성전 체제를 장악한 자들에게는 징벌의 날인 동시에 그들에게 박해받는 제자들에게는 속량의 날이 된다(눅 21:28, “28.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눅 21:32)라고 하셨으므로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신 것은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예수님의 재림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바로 유대 전쟁에 의해 초래될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이다. 이는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성전이 파괴될 때와 그 징조를 질문했고, 예수님이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본문이라는 점에서도 입증된다(눅 21:5-7).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건이다(눅 21:31). 그럼 하나님의 나라는 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는가? 그 이유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성전 권력을 장악한 자들로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을 속량하기 위해서이다. 성전 권력을 쥔 자들에게 박해받는 제자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성전 체제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럼 이 말씀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오늘날 성전 체제의 권력자들에게 박해받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교회에서 상처받은 가난한 성도들과 장애인들과 교회의 후원이 끊긴 선교사들과 생존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부교역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이 여러 차례 강조하신 작은 자들일 것이다(마 25:31-46).
성전 체제의 권력자들은 바로 자기들의 죄악 때문에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초래된다는 사실을 두렵고 떨림 가운데 명심하고 즉각 회개해야 한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이천 년 전의 예루살렘 파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큰 재난 가운데 임하여 그 권력자들을 심판하고 성전 체제를 파괴하면서 그들에게 박해받은 제자들을 해방하는 대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를 위하여 울어야 한다. 작은 자들을 외면하고 박해하여 심판 당할 수 있는 한국 교회를 위해 울어야 한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눅 23:31)에서 “푸른 나무”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죽은 나무”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말씀은 로마군이 살아 있는 푸른 나무와 같은 예수님에게도 십자가 처형을 하는데 죽어 있는 마른 나무와 같은 예루살렘은 더욱더 심하게 파괴하지 않겠으며 그 사람들은 더욱더 참혹하게 죽이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장차 일어날 예루살렘의 파괴와 그 성민의 학살을 예고하신 것이다(눅 23:29-30). 그래서 예수님은 슬피 울며 뒤따르는 여자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파괴는 예수님이 이미 예고하셨다(눅 19:41-44; 21:12-24).
예수님은 그 날을 “징벌의 날”이라고 표현하셨다(눅 21:22). 무슨 죄에 대한 징벌의 날인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죄이다(눅 21:12-19). 따라서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날은 성전 체제를 장악한 자들에게는 징벌의 날인 동시에 그들에게 박해받는 제자들에게는 속량의 날이 된다(눅 21:28, “28.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눅 21:32)라고 하셨으므로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신 것은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예수님의 재림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바로 유대 전쟁에 의해 초래될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이다. 이는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성전이 파괴될 때와 그 징조를 질문했고, 예수님이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본문이라는 점에서도 입증된다(눅 21:5-7).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건이다(눅 21:31). 그럼 하나님의 나라는 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는가? 그 이유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성전 권력을 장악한 자들로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을 속량하기 위해서이다. 성전 권력을 쥔 자들에게 박해받는 제자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성전 체제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럼 이 말씀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오늘날 성전 체제의 권력자들에게 박해받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교회에서 상처받은 가난한 성도들과 장애인들과 교회의 후원이 끊긴 선교사들과 생존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부교역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이 여러 차례 강조하신 작은 자들일 것이다(마 25:31-46).
성전 체제의 권력자들은 바로 자기들의 죄악 때문에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초래된다는 사실을 두렵고 떨림 가운데 명심하고 즉각 회개해야 한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이천 년 전의 예루살렘 파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큰 재난 가운데 임하여 그 권력자들을 심판하고 성전 체제를 파괴하면서 그들에게 박해받은 제자들을 해방하는 대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를 위하여 울어야 한다. 작은 자들을 외면하고 박해하여 심판 당할 수 있는 한국 교회를 위해 울어야 한다.
미션21 phj293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