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늦은 저녁,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온 국민은 불안과 분노로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5.18을 경험했던 광주 시민들은 국가 폭력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5.18를 주제로 쓴 ‘소년이 온다’로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은 스웨덴 한림원과의 기자회견에서 말하기를, 무장 군인과 시민들이 뒤엉켜 있었으나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고국의 안위를 걱정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개인의 삶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적 차원에서 매일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 속에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안전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됩니다. 이런 갈망은 궁극적으로 갈등이 해결되고 평화가 이루어지는 때, 화해의 시간을 고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화해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드러내 주는 이미지가 됩니다.
화해는 관계의 회복, 관계의 치유,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관계라는 단어는 현대사회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용어입니다. 사람들은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하고,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관계에 대한 갈망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본성에는 관계를 향한 갈망이 내재합니다. 그래서 깨어진 관계는 슬픔을 가져오고, 회복을 고대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영혼이 공허함과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랑하시던 제자로부터 배신당하시고 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며, 화해의 모델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일이 제자들과 화해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관계를 회복하고 더 큰 신뢰를 보여주시는 새로운 관계와 사명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관계 단절로 인한 고통의 강을 건너 화해의 땅에 들어가는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더욱 심각해진 환경 문제도 인간이 생태계에 가한 폭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연구소는 2024년 올해,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기온 상승폭을 1.55도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PC)가 경고한 1.5도를 넘는 원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 더 나아가 지구 종말이라는 말이 회자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가 아파요”라는 호소를 들으며 우리는 파괴된 생태계가 가져올 위험한 결과에 대한 두려운 직감을 갖게 됩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화해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와 관련된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 공동체 사이, 더 나아가 창조세계 전체와 화해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총체적 영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현대 산업 문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태 문명(ecological civilization)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생태 문명이 지향하는 가치는 ① 세계는 살아있고, 인간은 이 유기체적 시스템(organic system)의 일부라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 ② 조화(harmony), 즉 자연이 번영할 때 인간도 번영하는 조화, ③ 세계는 상호 연결된 관계의 망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직적 사고(systems thinking), ④ 미래를 내다보는 넓은 시야(foresight), ⑤ 주체적 지역공동체(local community)의 역할 등 다섯 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의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화해가 하나님에 의해 완성될 때까지 이 땅에서의 화해는 제자들에게 부여된 소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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