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한가위가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전 풍요로운 추석은 금세 스쳐지나갔고 지금은 거둬들인 것도 보잘 것이 없는 한가위다. 청년 때 먼 미래라 생각했던 수많은 세월은 지나서 보니 한줌 이야기 보자기에 불과했다.
지난주에 수 십 년 동안 중국 등지에서 선교하고 있는 사역자, 교회를 힘들게 개척한 사역자들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스토리를 우연히 직접 듣게 됐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사역자의 삶은 은혜가 깊었다. 그러나 그 은혜 안에 온통 상처투성이다. 병 들었지만 치료비도 없어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자식들 문제로 인해 발을 동동거렸던 수많은 세월들, 차라리 가족들을 위해 생명 보험을 넣고 죽어버리고 싶었던 참혹한 이야기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도 더 극한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를 붙들고 살아 왔던 것이다. 베드로도 광풍을 만나면 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요나도 미운 놈은 어쩔 수 없다. 갈멜산의 기적을 체험한 엘리야도 두려움에 도망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 이렇게 연약한 죄인인 우리는 늘 실패를 거듭한 상태에서 주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빚어지는 것이 하나님나라인가 보다고 나를 내려놓고 체념하고 있던 차에 “크리스찬리딩(reading)클럽”(약칭 크리클) 하반기 첫 모임을 가졌다. 칼럼 마감일이 지나 원고 독촉을 받고서도 진리를 사모하는 귀한 분들의 모임이라 참석했다. 마침 지난 상반기에 공부했던 ‘하나님나라’ 저자 ‘박철수’목사님이 노령에도 불구하고 ‘존 스토트’ 목사의 ‘현대 사회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강론하셨다. “기독교인은 세상을, 가장 세속적인 주제라도 기독교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현대그리스도인들은,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도 기독교적 사고를 상실하고 있다”며 “세속적 동향에 굴복하지 말고 기독교적 지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박목사님의 말씀에 도전을 받았다.
기독교적 지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 이날 참석하신 사역자들의 여러 의견이 대립되기도 하면서 불꽃이 튀었다. ‘희년사회’를 위해 수 십 년간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외롭고 힘든 길을 오롯이 걸어온 ‘박창수’ 목사는 예수님은 기득권층의 반대편에 섰던 좌파라는 다른 사역자의 의견에 대해 “예수님은 좌도 우도 아닌 오히려 하파(낮고 가난하고 병든 외롭고 세상에 비빌언덕 하나 없는 우리들 중 가장 작은자 편)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 기독교인의 지성은 우리들 가운데 가장 헐벗고 억압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처참한 처지에 놓인 작은자들에게 희망을 선포하고 자유와 해방을 주는 복음(희년)을 전하고 정의와 긍휼이 있는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매우 공감된 말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던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우린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사실은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 이름을 팔아 호의호식하며 세상에서 뽐내고 살아가는 속물이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회개할 때다. 기독교적 지성을 회복하고 하나님나라 희년을 선포하며 희년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각성하여 가난한 자 병든 자 고독한 자들의 삶을 살펴보고 돌봐주며 살아갈 때 우리 앞에 놓인 모든 현대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모든 것들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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