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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과학사기사건! 필트다운인(Piltdown)!(2)
미션21 phj2930@nate.com
2023년 08월 24일(목) 15:18
홍기범
·한국창조과학회 광주전남지부장 ·광주겨자씨교회 집사
1912년 12월 18일, 영국 런던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필트다운인(Piltdown man) 사기 사건은 41년 후인 1953년에 조작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2002년에 고생물학자인 프랑스 인 에르베르 토마는 필트다운인 사건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은 2005년에 우리 말로 번역되어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최고의 과학사기사건 : 필트다운>이라는 제명으로 출판되었으며, 360쪽에 달한다.
필트다운인의 발견자는 찰스 도슨(Charles Dawson; 1864~1916)이다. 찰스 도슨은 루이스(Lewes)에 살면서, 어크필드(Uckfield)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아마추어 고고학자이었다. 필트다운(Piltdown)은 어크필드에서 수 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1908년 필트다운에 있는 자갈채취장 인부들이 두개골을 발견했으며, 1911년에 두개골에 속한 몇 개의 조각들을 발견했으며, 1912년 6월에 턱뼈를 추가적으로 발견했다. 그 동안 스미스 우드워드는 부서진 두개골을 복원했으며, 뇌의 용량이 1070㎤ 임을 밝혔다. 이 턱뼈와 복원한 두개골이 필트다운인으로 불리어지게 된다.
대영박물관의 지질학 분야 담당자였던 고생물학자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Arthur Smith Woodward; 1864-1944)는 (필트다운인 발견자인) 찰스 도슨과 함께, 1912년 12월 18일에 런던의 피커딜리 가 중심에서 필트다운인(두개골과 턱뼈)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들은 턱뼈는 원숭이의 특징을 두개골은 완전한 인간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해부학자 그래프턴 엘리엇 스미스(Grafton Elliot Smith; 1871∼1937)는 필트다운인에 대하여 이렇게 주장했다. “이 뇌는 인간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턱과 얼굴 그리고 몸 전체에서 상당 부분이 원숭이 조상의 전체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스미스는 필트다운인의 옹호자가 된다.
필트다운인에 대한 수많은 의혹과 비판이 초기부터 제기되었다. 해부학자 아서 키스(Arthur Keith; 1866~1955)는, 턱뼈와 이빨들이 침팬지의 것과 닮았지만, 두개골과 어울리려면 인간의 턱뼈와 앞니를 가져야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자연사박물관의 게리 밀럿과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의 마르슬랭 불과 영국의 해부학 교수 데이비드 워터스턴 등은 필트다운인에 대하여 의구심을 제기했는데, 두개골과 턱뼈가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계속적으로 필트다운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41년이 지난 1953년에야 인류학자 윌프리드 르 그로스 클락(Wilfrid Le Gros Clark), 케네스 오클리(Kenneth Oakley), 조셉 와이너(Joseph Weiner)가 “필트다운 인은 사기다”라는 학설을 발표함으로써, 필트다운인 두개골과 턱뼈가 조작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두개골과 턱뼈와 치아의 나이가 달랐으며, 인간의 두개골에 오랑우탄의 턱뼈, 침팬지의 치아를 조합한 모조품이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주모자였던 찰스 도슨은 이미 사망한 후였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사기 사건이 41년 동안이나 비밀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연구자들이 원본이 아닌 복제품으로 연구하였기 때문이며, 원본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 측은 외부 학자들에게 원본을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참고 자료 : <위피디아>, <인류의 기원 둘러싼 최고의 과학사기사건 : 필트다운>, <나무위키>, <인류의 기원에 대한 기각 사유(교진추)]
▲ 1915년 존 쿡이 촬영한 필트다운 인 발견 관계자. 뒷줄: 왼쪽부터 F O 발로우, 그래프턴 엘리어트 스미스, 찰스 도슨,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 앞줄: A S 언더우드, 아서 케이스, 윌리엄 플래인 파이크라프트, 레이 랭케스터(위키피디아)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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