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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물고기처럼 벌레처럼

-하박쿡의 항변은 정당한가?- (합 1:14)

미션21 phj2930@nate.com
2023년 04월 25일(화) 17:15
정형수 목사
아시아교회 담임 Mission Bible college & Seminary 대학원장
“어찌하여 주께서 인간을 바다의 고기처럼 만드시고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처럼 만드셨습니까?”(합 1:14)
공동번역은 “바다의 고기로 만드시고 왕초 없는 벌레로 만드시어”로, 현대인의 성경은 “…사람을 바다의 고기나 다스리는 자가 없는 곤충처럼 대하십니까?”라고 번역했다. 사람은 “아담”으로 이스라엘에 국한된 사람이 아니고 인류 전체를 말한다. “바다의 고기처럼(케데게이 하얌”)”이 원문이다.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처럼(캐레메쉬)”의 “레메쉬”는 창세기 1:26절에 의하면 땅을 기는 곤충으로 하등동물에 속한다. 동물 창조 때 들짐승(맹수), 가축 그리고 땅을 기는 “레메쉬” 순이다. 땅을 기어 다니는 파충류에 속한다. 에스겔 8:10절과 호세아 2:18절에서는 “곤충”으로 번역하였다.
예언자 하박쿡은 어찌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아담)을 “물고기와 곤충”에 비교하여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는가, 하박쿡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강조한 최초의 예언자이다(합 2:3). 이 말씀은 사도 바울에게 영향을 주었으며(롬 1:17, 갈 3:11), St. Augustine을 거쳐 M. Luther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기치 하에 종교개혁을 단행, 그리스도교를 이 세상에 탄생시켰다. 하박쿡은 유대교와 우리 그리스도교에 지대한 영향을 준 예언자이다. 의에 투철한 하박쿡이 인간을 “바다의 고기 벌레”로 본 것을 알기 위해서는 하박쿡 시대의 유다의 정황을 아는 것이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정황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신흥 바빌론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베를 함락시켰으며(B.C. 612년경) 그의 세력을 팔레스틴을 향해서 펼치고 있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도구인 바빌론을 통하여 유다를 치기 위해서다. 이때 유다의 범죄는 그 도가 지나쳤다. 그들은 이미 선민의 나라가 아니었다. 므낫세, 아몬 이후 최고의 부패를 자랑했다. 악인에 의해 의인이 박해를 받아야 했으며 계속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고 계셨다. 여호야킴의 학정은 견딜 수 없었다. 탄압과 강제 노역, 징세, 강대국 애굽에 아부하는 외교정책, 사치와 낭비, 권력 유지를 위한 폭정을 일삼았다. 관리는 광포했으며 시세에 편승하여 부자된 자들은 이웃에 대한 자비심이나 동정심이 없었다. 귀족은 음란했으며 성직자와 엘리트로 자처하는 문인들은 말쟁이로 타락했다. 그런데도 야훼 하나님은 계속 침묵하고 계셨으며 마치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처럼 보였다. 오늘의 우리시대와 방불했다. 신정론적 회의에 견딜 수 없었던 하박쿡은 하나님께 항변했다. 그의 두 번째 항변과 애소 중에서 본문이 기록되었다. 그가 바빌론을 들어 유다를 치겠다는 주의 음성을 듣고 애소하는 내용이다. 어찌하여 “인간을 바다의 고기처럼, 벌레처럼 만드셨습니까?” 이 시대의 율법은 사라졌고 명령은 지켜지지 않는다. 종교는 부패했으며 도의는 땅에 떨어졌다. 선한 것은 유다에서 사라졌다. 인간이 바다의 고기처럼 되었다. 바다의 고기란 무엇인가, 바다의 고기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고, 작은 것은 보다 작은 것을 잡아먹는다. 약하고 힘없는 것은 계속 먹히기만 한다. 도덕이나 자비심이란 없다. 먹히고 먹는 세상이다. 유다가 그렇게 되었다. 악하고 불의한 자, 권력에 의해 가난하고 힘없는 자는 계속 당하고만 있다. 이런 억울한 세상을 하박쿡은 목격한 것이다. 이제는 큰 고기 바빌론에 의해서 작은 고기인 유다는 먹힐 것이다. “곤충 같은 인간”은 무엇인가. 동물의 세계에도 고등동물에 속할수록 질서가 있으며 리더가 있다. 철새들은 때를 정확히 안다. 날아올 때가 있고 떠날 때를 안다. 그리고 같은 종족들은 서로 해치지 않는다. 그런데 곤충들은 질서가 없다. 제각기 움직인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겐 정부가 있으나 사회의 구조악이 무정부 상태를 만들고 있다. 의로운 자가 없다. 유아들이 폭력에 시달리고, 어린 여학생들이 은밀한 곳에서 유린당하고, 학폭 문제는 여전히 우리 곁에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재벌 3세들과 연예인들이 유착되어 환락을 즐기고, 일부 정치인들은 부정부패의 정경유착을 통해 서민들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세탁한다. 이웃은 없고 자기만 있다. 이타심이 없고 이기심만 넘친다. 퇴폐풍조가 판을 친다. 사람들이 동물화 되어 가고 있다.
“레메쉬”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음험하고 방탕하다는 뜻이다. 남을 중상모략하고 비열한 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존귀한 인간성이나 인격은 이미 죽었다. 이런 시대에는 의인이 설 자리가 없다. 하박쿡의 항변은 정당하다. 그의 통찰력 있는 예언에 감복할 뿐이다. 인간은 바다의 고기나 곤충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생명 종교, 도덕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 이 길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인간 본래로”의 회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고후5:17).
미션21 phj2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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